정보화사회의 열쇠 ‘비밀번호’가 현대인에게 새로운 스트레스로 등장하고 있다.
▼한사람 최고 30개까지▼
은행통장 PC뱅킹 신용카드 인터넷사이트등록 PC통신 삐삐 회사네트워크접속 사이버주식거래 아파트 전자문…. 정보화사회에서 한 사람이 관리하는 비밀번호는 10개가 넘는 것은 이제 보통.
비밀번호를 깜박 잊거나 잘못 입력해 은행에서 돈을 못찾거나 네트워크 접속이 거부되고 심지어 가족들이 집을 비운 사이 아파트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해 밖에서 처량하게 가족을 기다려본 경험을 가진 사람도 많다. 이렇게 되자 비밀번호를 한두 개로 통일해 관리하거나 자기만의 노하우로 비밀번호를 관리하는 사람이 최근 크게 늘어났다.
회사원 송재화(宋在和·30)씨. 송씨는 작년까지 PC통신과 각종 인터넷사이트 등록 비밀번호 20여개, 은행통장과 PC뱅킹 비밀번호 9개 등 30개 이상의 비밀번호를 갖고 있었다. 송씨는 새해 들어 모든 비밀번호를 4자리 숫자 한 개와 6자리 숫자 한 개로 통일했다.
▼하나로 통일하는 사람 늘어▼
“작년초까지 PC뱅킹 비밀번호를 한달에 한번씩 바꿨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이 뒤죽박죽 돼 낭패를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비밀번호를 간단히 유지하니 스트레스가 적어 해방감을 느낀다”는 게 송씨의 말.
송씨처럼 계좌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해 은행지점에 직접 찾아오는 사람이 각 지점마다 한달에 수십명에서 수백명에 이른다. 한국통신 하이텔 고객센터에는 하루 100여명이 자신의 비밀번호를 묻는다.
서울 강남에서 의류사업을 하는 양모씨(32·서울 강남구 청담동). 지난해말 10여개의 은행계좌를 정리해 새로운 통장을 만들려다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은행측이 “98년부터 주민등록번호나 전화번호를 비밀번호로 이용할 수 없도록 규정이 바뀌었다”며 생일을 비밀번호로 적은 계좌신청서의 접수를 거부한 것.
가게문 집보안시스템 등의 비밀번호를 매달 바꾸고 이를 기억하느라 고생하던 양씨는 이 기회에 번호를 아예 통일키로 결심, 문자 비밀번호는 쓰고자 하는 영문글자를 한글자판에서 치는 방법을 도입했고 숫자 비밀번호는 아내와 자신이 처음 만난 날로 통일했다.
▼번호관리 웹사이트 인기▼
하나은행 관계자는 “최근 고객들은 관리해야 하는 비밀번호가 많다보니 비밀번호를 한두가지로 통일하고 옛날 살던 집의 전화번호 군번 결혼기념일 등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문대 정보통신학과 최선정(崔善靜)교수가 지난해 11월 개설한 각종 ID와 비밀번호를 관리하는 웹사이트(www.idbook.com)는 두 달 만에 가입자가 2000명을 넘어섰다. 최교수에 따르면 등록자가 올려놓은 비밀번호를 보면 한 명이 평균 10개 이상의 비밀번호를 갖고 있고 40개 이상을 가진 사람도 상당수.
그러나 이 웹사이트도 등록을 위해서는 ID와 비밀번호가 있어야 하고 만약 이 사이트의 비밀번호를 잊어버리면 모든 비밀번호를 몽땅 날려야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병기기자>watch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