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만에 한달 월급 날려 ▼
이씨는 먼저 사이트상의 연습게임방을 클릭했다. 연습게임에서 이씨는 10여분 만에 100달러를 땄다. 간단히 돈을 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씨는 곧바로 도박프로그램을 다운받은 뒤 사이버도박에 들어갔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연습게임에서는 그렇게 쉽던 포커가 실전에서는 좀처럼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이후 이씨는 상사의 눈치를 봐가며 사무실에서 틈만 나면 사이버도박에 빠져들었다. 점심식사도 구내식당에서 간단히 해결한 뒤 곧바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잃은 돈을 찾기 위해 퇴근시간도 미뤄가며 사이버도박에 열을 올렸으나 결국 10여일 만에 한달치 봉급을 모두 날렸다.
▼ 국내 100만명 도박추정 ▼
초등학교 교사 김모씨(31)도 비슷한 처지. 김씨도 방과 후 교무실에서 우연히 인터넷 도박사이트에 들어갔다 이씨와 똑같은 낭패를 보았다.
김씨도 잃은 돈만 만회하면 사이버도박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집에서 밤을 새며 도박사이트에 매달렸으나 결과는 참패. 신용카드를 통해 자신의 돈이 계속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을 뿐이다. 인터넷을 이용한 사이버도박이 이렇게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경찰 추정에 따르면 이들처럼 인터넷을 통해 사이버도박을 하는 국내인은 100만명을 훨씬 넘고 있다. 이에 따라 사이버도박을 통해 외국으로 유출되는 외화만도 매년 수백만달러에 이른다.
실제 경찰이 19일 적발한 외국 연계 국내 도박사이트 14개를 통해 도박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사이버도박을 한 내국인은 어림잡아 20여만명에 이른다. 이들 적발된 사이트 중 2개의 사이트에서만도 지난해 4월 이후 27만달러의 외화가 외국 도박사이트로 넘어갔다.
▼ 年 수백만달러 유출 ▼
특히 도박프로그램을 다운받은 곳 중에는 일반기업체와 은행은 물론 경북 및 충남도청, 서울시지하철건설본부, 제주도교육청, 육군사관학교와 전국의 초중고교가 망라돼 있었다. 또 접속시간대도 대부분 근무시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사이트의 하루 평균 접속 건수도 4000여건이 넘었다.
▼ 업자4명 영장 신청 ▼
이처럼 사이버도박이 기승을 부리면서 지난해엔 외국의 도박사이트 업자와 결탁해 국내에 도박사이트를 개설, 운영하는 업자까지 등장했다.
이들 국내업자는 외국 사이트 업자와 국내대리점 형식의 계약으로 자신들의 사이트를 통해 외국 업자에게 유출되는 외화의 일정부분을 배당금으로 받는 것. 경찰은 이렇게 국내에 개설된 도박사이트는 3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단속: 경찰청은 19일 미국의 유명 도박사이트 운영업자로부터 도박프로그램을 공급받아 지난해 4월부터 국내에서 ‘골든카지노’ 등 인터넷 도박사이트 14개를 개설, 운영해 온 혐의를 받고 있는 김모씨(23) 등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정모씨(26)는 불구속입건했다. 경찰조사 결과 김씨 등은 미국 도박사이트업자와의 대리점 계약으로 자신들이 운영하는 사이트에서 내국인들이 미국업자에게 유출한 돈의 10∼25%를 배당금으로 받아 왔다.
경찰은 김씨 등이 운영해 온 도박사이트를 통해 유출된 외화의 정확한 규모를 조사하는 한편 이들 사이트를 통해 도박프로그램을 다운받은 사람들을 추적, 조사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현재 외국에서 개설돼 인터넷에 올려진 도박사이트가 300여개를 훨씬 넘는데다 사이버도박의 자금 결제도 신용카드를 통해 위장회사 명의로 하게 돼 있어 단속에 애를 먹고 있다. 사무실에서도 현재로선 몰래 하는 사이버도박을 막을 뾰족한 수단이 없는 실정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인터넷 전용회선을 통해 사이버도박을 할 수 없도록 상급자들이 감독을 철저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그러나 무엇보다도 네티즌들이 도박사이트를 인터넷에서 추방하려는 의지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현두기자> ruch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