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메일 검열프로그램, 정부기관-대기업 160곳서 설치

  • 입력 2000년 2월 24일 19시 40분


‘회사는 어디까지 종업원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것일까.’

상당수 대기업과 정부기관이 정보유출을 막는다는 명분아래 공무원이나 사원의 전자우편(E메일) 검열용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어 사생활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보안상 검열이 불가피하더라도 E메일에는 사생활과 관련된 내용이 많은 만큼 미리 소속원과 검열절차에 대해 합의를 해야 한다”며 “소속원 모르게 E메일을 검열한다면 명백한 사생활침해”라고 지적한다.

▼정부기관 대기업들 운용▼

E메일 검열 프로그램을 구입해 간 것으로 확인된 기관이나 회사는 160여곳. 정부부처 지방자치단체 정보통신회사 전자회사 금융회사 대학 연구소까지 다양하다.

이중 현대자동차는 직원들에게 검열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이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보안팀 관계자는 “특정단어가 들어간 E메일을 검사하는 특정단어(키워드) 검색을 하거나 회사측이 지정한 요주의 인물의 E메일 전부를 검열하고 있다”며 “직원들에게 검열사실을 비밀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회사직원이 회사밖으로 보낸 모든 E메일을 보관하고 있다가 위에서 지시가 내려오면 특정인의 것을 사후적으로 검열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회사측은 검열사실을 알렸다고 주장하지만 사원들이 검열사실을 모르는 회사도 상당수 있다. 한 종합상사는 “검열 가능성이 있음을 신입사원 교육때 알렸다”고 주장했지만 이 회사의 한 직원은 “검열사실을 모르고 있고 기술적으로 E메일 검열이 가능한지도 모르고 있었다”고 밝혔다.

검열프로그램을 구입해간 것으로 확인된 한 전자회사 간부는 “E메일 검열여부는 물론 검열프로그램이 있는지 여부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 정보통신회사 직원은 “회사가 E메일을 검열한다는 소문이 파다하지만 회사가 이 사실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회사는 직원들에게 E메일이 검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LG전자는 사원이 회사밖으로 메일을 보낼 경우 ‘회사기밀이 포함됐는지 다시 확인하라’는 경고문이 모니터에 뜨도록 하고 매달 보안교육을 통해 ‘E메일이 검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국내에서 널리 사용되는 E메일 검열프로그램은 3개. 국산으로는 소만사가 자체 개발한 E메일 전문 검열프로그램 ‘메일아이’와 ‘웹키퍼’가 있다. 이스라엘에서 개발, 세계적으로 알려진 종합 보안프로그램 ‘세션월3’는 켁신사가 수입, 판매하고 있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검열방법은 내용이 많거나 특정 단어가 들어있는 E메일만 검색하는 것. 소만사 김대환(金大煥)사장은 “주로 경쟁사로 나가는 메일, 내용이 많거나 특정단어나 숫자가 들어있는 메일만을 검열하고 기밀을 다루는 사람들은 따로 분류, 모든 메일을 검열하는 방법이 주로 사용된다“고 말했다.

특정단어 검열의 경우 보통 ‘기밀’ ‘계약’ ‘인사’ ‘제안서’ ‘고객’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메일이 자동으로 분류돼 보안요원이 이 메일을 직접 읽고 의심이 가면 상부에 보고한다.

▼"명백한 사생활 침해"▼

최용석(崔容碩)변호사는 “외국은 회사가 보안서류에서 보안상 직원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사례를 적시, 직원들이 이를 읽고 서명을 하도록 하고 있다”며 “보안이라는 명분으로 회사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 직원들에게 동의도 구하지 않거나 더욱이 알리지도 않는 것은 민사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병기기자>watch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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