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은행들의 인터넷뱅킹 경쟁은 미래투자라는 명목으로 경쟁은행이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모습이어서 자칫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투자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비용 얼마들지 몰라요”〓지난달말 한 시중은행은 기자들을 모아놓고 디지털금융기관의 비전을 제시했다. 금융포털시스템, 기업간(B2B) 거래시스템 구축, 인터넷쇼핑몰 유치 등 최근 유행하고 있는 모든 아이템을 이 자리에서 발표했다. 그러나 향후 이같은 사업에 얼마의 비용이 들어갈지, 또 올릴 수입이 어느 정도나 될지에 대해서는 명쾌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하드웨어 장비에 투자될 금액만을 제시한 정도였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일부 은행이 인터넷뱅킹을 들고 나오자 나머지 은행들이 충분한 검토 없이 부랴부랴 인터넷뱅킹 서비스 등 디지털금융 전략을 내놓고 있다”며 “심지어 대출 신청만 인터넷으로 받고 대출심사 신용평가 등은 여전히 수작업으로 하는 무늬만 인터넷뱅킹인 은행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용근(李容根)금감위원장이 최근 요구한 구체적인 ‘디지털금융의 청사진’을 당장 제시할 수 있는 시중은행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게 은행권의 솔직한 반응.
한국금융연구원 권재중(權才重)연구위원은 “인터넷환경이 워낙 급변하기 때문에 사업방향 설정과 비용 및 수익 산출 등의 밑그림을 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며 “그러나 인터넷뱅킹에서 앞선 미국 은행의 경우 충분한 전략을 세우고도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준비없는 디지털 금융은 오히려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출혈경쟁 우려〓지난달 신한은행이 인터넷뱅킹의 계좌이체 수수료를 받지 않고 대출금리를 인하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전략을 내놓자 무한경쟁이 본격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신한은행의 인터넷뱅킹 고객이 이 조치 덕분에 두 배 가까이 증가하자 다른 시중은행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따라가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무작정 따라갔다가는 손해보는 장사가 뻔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있는 것.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인터넷뱅킹을 통해 인건비 절감과 다른 부문의 수익이 늘어나지 않는 상태에서 수수료 면제 등의 경쟁이 벌어지면 출혈경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연구원은 최근 내놓은 ‘인터넷뱅킹의 현황과 과제’라는 보고서에서 시중은행이 올해 지난해의 두 배에 가까운 정보기술투자를 하고 있지만 영업전략에 맞는 적절한 투자가 되지 않거나 은행간 중복투자로 비효율적인 투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