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닥터의 건강학]심영수교수/호흡기질환 분야

  • 입력 2000년 3월 21일 19시 34분


“나의 시신을 열어 지금껏 진단 내용과 암의 진행상태가 똑같은지 똑바로 보고 암 연구에 활용토록 하라.”

TV드라마 ‘허준’에서 유의태가 허준에게 남긴 유언과 흡사하지만 드라마와 달리 지어낸 얘기가 아니다.지난해 3월 ‘한국 호흡기학의 태두’ 한용철박사가 자신의 전공인 폐암에 걸려 70세의 일기로 숨지면서 실제로 남긴 유언이다.

한박사의 제자인 심영수교수(55)는 스승을 허준이 유의태 생각하듯, 아니 그 이상으로 존경하며 한박사의 뜻을 받들고 있다. 심교수의 좁은 연구실, 책상 옆에는 한박사의 사진이 있고 벽에는 한박사가 즐겨 인용한 불경이 담긴 액자가 걸려있다.

“선생님은 평소 환자를 친절히 돌보는 것이 돈 안드는 보시(布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의사는 한점 빈틈없이 철저히 환자를 돌봐야 된다고 하셨는데 저는 둘 다 스승님의 흉내도 못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위의 평가는 다르다. 스승의 경지까지 올라섰다는 것.

후배 이춘택교수는 “심교수는 환자의 증세 하나하나를 놓치는 법이 없기 때문에 오진율이 제로에 가깝다”면서 “내 가족이 아프면 무조건 심교수에게 부탁하겠다”고 말했다.

심교수는 호흡기환자가 복통 등 다른 증세를 호소할 경우에도 무심코 넘기지 않고 꼭 해당 과의 교수에게 의뢰해 병을 고치도록 한다.

그는 늘 웃는 낯빛으로 진료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994년부터 3년 동안 만성폐쇄성 폐질환으로 심교수의 진료를 받아온 이순옥할머니(당시 85세)는 심교수의 친절진료에 감동, 평생 삯바느질로 모은 돈 10억원을 병원 연구비로 기탁하기도 했다.

서울대병원엔 비슷한 이름을 가진 두 교수가 있다. 심영수교수와 의료관리학과 신영수교수. 서로 ‘다른 영수’를 찾는 전화와 편지를 수시로 받는데 사실 대학 동기다. 졸업 때 심교수가 1등이어서 신교수는 2등인데도 심교수 때문에 ‘공부못하는 영수’란 별명이 붙었다.

‘두 영수’는 대조적이다. 신교수는 의대음악반 지도교수를 맡는 등 음악에 조예가 깊고 활동적이다. 그렇지만 심교수는 첫 인상이 가난한 음악교사를 연상시키는데다 부인이 신현확전부총리의 맏딸로 중견 피아니스트인 신봉애 연세대 음대교수인데도 자타가 공인하는 음치. 회식자리에는 참석해도 노래방에는 기필코 빠질 정도다.

그는 나서는 것을 꺼리고 늘 조용하게 환자만 본다. 기자가 ‘좋은 일’로 취재나와도 급히 숨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심교수는 80년대부터 결핵 폐암 등 거의 모든 호흡기질환자를 봐왔다.

80년대 중반엔 잘 때 혀 뒷부분이 막혀 코골이가 생길 경우 ‘양압기’라는 특수장치를 코에 끼고 자게 해서 치료하는 방법을 도입했으며

80년대말에는 우리나라 사람은 거의 안 걸린다고 알려진 유육종증과 범미세성기관지염(DPB) 등의 희귀 호흡기질환이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요즘엔 만성폐쇄성 폐질환 환자를 집중적으로 보고 있다. 흡연 등으로 허파꽈리가 터져 너덜너덜해지는 바람에 숨이 차고 기침이 계속 되는 폐기종이나 만성기관지염 등이 이에 속한다.

“노인이 숨찬 경우엔 대부분 이에 해당되고 증세가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되풀이하는 기관지천식과는 달리 가만히 놓아두면 계속 나빠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적절히 약물치료를 받으면 편안히 지낼 수 있습니다.”

심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만성폐쇄성 폐질환에 잘 걸리는 사람의 유전적 요인을 밝혀내 2월 영국의 학술지 ‘흉부’에 발표했으며 최근엔 컴퓨터단층촬영(CT)을 활용해 폐암을 조기발견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연구 중이다.

심교수는 베스트닥터에 선정됐다는 소식에 “나는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면서 어쩔 줄 몰라했다. “환자의 건강만 챙겨왔지 나의 건강법은 O점에 가깝다”는게 그의 말.

우선 20년째 담배를 피우고 있다. 평소 환자보기가 미안해서 몇 차례 담배를 끊으려고 했고 스승인 한박사가 담배를 피우다가 결국 폐암으로 숨지는 것에 충격을 받아서도 금연에 돌입했지만 실패했다.

모질지 못해서일까. 그는 올초에도 금연계획이 1주일을 넘기지 못했지만 “이번 베스트닥터 선정을 계기로 기필코 끊겠다”고 다짐했다.

운동도 지금껏 회진하는 것 외에 별도로 하지 않았다. 10년 전 우연히 척추뼈가 부러진 뒤 과격한 운동을 할 수 없었던 것. 심교수는 “승용차 대신 지하철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좀더 걷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일반인들이 잘못된 상식 중 하나가 운동하면 폐활량이 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폐활량은 폐의 크기를 뜻하므로 어른이 돼서 운동해도 늘 수 없습니다. 대신 운동을 하면 근육이 효율적으로 산소를 사용하기 때문에 호흡시스템이 좋아집니다. 폐는 8살까지 허파꽈리 수가 늘어나고 20세까지 크기가 자랍니다. 청소년 흡연은 폐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해롭구요.”

심교수에게도 건강법은 있다. 첫째는 늘 웃음을 잃지 않는 낙천적 태도, 두번째는 규칙적 식사. 심교수는 “아침엔 토스트와 커피로 간단히 식사하고 점심과 저녁 때는 채소를 듬뿍 먹으려고 노력한다”며 “채소엔 폐암을 예방한다고 추정되는 베타카로틴이 풍부하다”고 소개했다.

▼어떻게 뽑았나▼

호흡기질환 분야 ‘베스트 닥터’로는 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 심영수교수가 뽑혔다. 동아일보사가 16개 종합병원에서 폐질환을 주로 치료하는 호흡기내과 및 흉부외과 전문의 5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호흡기내과에선 교수마다 만성폐쇄성폐질환 폐결핵 폐암 등의 세부전공이 있지만 한 질환만 보기보다 여러 가지 질환을 함께 보는 경우가 많다. 폐암의 경우 별다른 증세가 없어 조기진단이 어렵고 치료결과도 좋지 않아 완치율이 5%에 불과한데 진단과 항암화학요법 등은 호흡기내과에서 맡고 수술은 흉부외과가 담당한다. 현재로선 조기발견 뒤 암 덩어리를 도려내는 것이 가장 확실한 치료법.

호흡기질환 부문 베스트닥터

이름소속세부전공
심영수서울대 호흡기 내과만성폐쇄성폐질환
김원동울산대 서울중앙 호흡기내과만성폐쇄성폐질환 폐결핵
김주현서울대 흉부외과폐 및 식도수술
김성규연세대 신촌세브란스 호흡기내과만성폐쇄성폐질환 폐암
유세화고려대 안암 호흡기내과만성폐쇄성폐질환 폐암
이두연연세대 영동세브란스 흉부외과폐절제및이식수술
권오정성균관대 삼성서울 호흡기내과폐암 폐결핵
김동순울산대 서울중앙 호흡기내과기관지천식
박성학가톨릭대 강남성모 호흡기내과만성폐쇄성폐질환 기관지천식
정기석한림대 성심 호흡기내과감염성 폐질환

11∼20위에는 △고윤석(울산대 서울중앙) △박춘식(순천향대) △한성구(서울대) △심영목(성균관대 삼성서울) △장준(연세대 신촌세브란스) △성숙환(서울대) △최병휘(경희대) △인광호(고려대 안암) △유지홍(경희대) △김광택(고려대 안암) 교수가 올랐다.

<이성주·이호갑기자> stein33@donga.com

▼결핵…국내환자 43만명 고통 다이어트, 지나쳐도 걸려▼

결핵은 전설속에 묻힌 병?

그렇지 않다. 지금도 세계 인구의 ⅓이 결핵균에 감염돼 있고 매년 약 300만명이 결핵으로 숨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구의 58.9%가 결핵균에 감염된 상태. 다만 결핵균이 실제로 몸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성 폐결핵’ 환자가 65년 5.1%에서 현재 약 1%로 줄었을 뿐이다. 지금도 약 43만명이 결핵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누구나 이 병에 걸릴 수 있다.

▽결핵은 왜 걸리는가?〓결핵은 결핵균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전염병. 그러나 어른들은 전염됐을 때보다 체력이 갑자기 떨어졌을 때 몸안에 있는 결핵균이 활동해서 발병하는 경우가 더 많다. 과로 폭음 스트레스 등으로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먼역억제제 또는 스테로이드제제를 먹는 경우 발병하는 경우가 많은 것.

특히 요즘 젊은 여성들이 지나친 다이어트로 영양결핍이 돼 결핵에 걸리는 경우가 늘고 있다.

▽결핵에 걸리면〓아무 증상이 없다가 건강검진에서 발견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몸이 피로해지고 밥맛이 떨어지며 미열 기침 객담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심하면 혈담 호흡곤란 등의 증세가 이어진다.

병원에서 천식 진단을 받고 치료해도 증세가 좋아지지 않으면 기관지결핵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대부분 조기에 발견하고 약물치료를 받으면 완치될 수 있다. 환자의 5%는 약물내성이 생기는데 요즘 병원에선 수술과 약물치료를 병행해 치료율을 높이고 있다.(도움말〓서울대 호흡기내과 김영환교수)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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