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포터]연극으로 가상현실 체험…'신라의 꿈' 준비 한창

  • 입력 2000년 6월 2일 15시 08분


영화는 제작된 필름이 상영되는 어느 곳에서나 관람이 가능하다. TV 프로그램은 짧은 시간에 공중파를 통해 전 세계로의 방영이 가능하다. 앞선 장르에 비해 연극은 여전히 다리품을 팔아가며 극장에 가야하고 그 시간, 그 상황에서만 관람이 가능한 소수 관객의 예술이다. 2000년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여 과연 연극은 원시예술의 형태로만 그 가치가 보존돼야 하는가. 영화 <폭로>에서처럼 안경을 끼고 컴퓨터의 가상현실 속으로 들어갔을 때, 그 장소에 없는 사람이 살아 움직이고, 가상의 공간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환상이 연극에서는 불가능한가.

대답은 '아니오'이다.

2000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대비하여 극단 '몸' 대표 박홍진씨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은 연극을 디지털시대의 환상으로 재현하는 작업을 준비 중이다. 연극의 제목은 <신라의 꿈>. 이 연극 속에서 관객은 3차원 특수안경를 착용하고 객석 의자에 장착된 인터랙티브(interactive) 조작키를 이용하여 눈앞에 재현되는 가상의 신라시대를 경험하게 된다.

관객은 화엄경 입법계품편의 동자승인 '선재동자'에서 따온 '선재'라는 인물과 함께 신라의 월성-황룡사-석굴암 등 실제 신라의 공간을 다니게 된다.

<신라의 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신라에 해가 두 개가 뜨는 변괴가 일어나자 이를 근심하던 중에 주인공 선재는 산화공덕 드리는 찬불가를 지어부르면 해가 하나로 합쳐진다는 얘기를 듣고 신라 순례를 떠난다. 여기서 해 두 개는 남과 북을 상징하며 해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은 통일을 의미한다. 선재는 여행 중 박혁거세 김유신 김춘추 등의 인물을 만나고, 그들을 통해 신라인들의 통일에 대한 의지를 깨닫는다. 연극은 모든 신라인이 나라의 안녕과 통일을 기원하는 처용무를 추면서 막을 내린다.

이 가상현실연극의 묘미는 신라의 사라진 문화가 복원되어 신라 문화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관객이 안경을 쓰고 보면 월정교로부터 해가 시야로 확 들어오고, 잠시후 눈앞에 장대한 석굴암이 어느새 나타난다. 관객은 종래의 관극만 하는 수동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선재와 동행하면서 극을 진행시키는 주체가 된다.

가상현실연극 사이트인 브이알시어터(http://www.vrtheatre.co.kr) 대표이기도 한 박홍진씨는 "최초의 시도이기 때문에 입체영상시 조명와 관객과의 교감 문제를 특히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가상현실연극이 국내에서 공연됐던 <오르페오>와 다른 점은 <오르페오>의 경우 무대 위의 배우가 이미 찍혀져 있는 영상과 호흡해야 하지만 <신라의 꿈>은 스크린 뒤에 가서 촬영을 하면 바로 실시간으로 무대 위 스크린에 입체 영상으로 투사된다는 점이다. 즉 실제 공연 때 찍는 영상이 무대 위에 재현되는 것이다. 또한 <오르페오>의 경우는 홀로그램을 이용한 영상 연극으로서 기존의 연극 스타일을 기술적으로 확장하긴 했지만 여전히 관객은 객석에 앉아 바라보는 연극이었던 반면 <신라의 꿈>은 그야말로 관객이 가상현실 환경 속에 들어가 가상현실로 창조된 환경을 실제로 체험하는 것이며 인터랙션(interaction)이 가능하다. 즉, 관객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입체영상과 호흡하게 된다는 것이다.

박홍진씨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자기 노동의 주인이 되는 것이 진정한 노동의 개념인 것처럼 자기 스스로 작업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상현실연극의 목표"라고 말했다. 결국 자기가 제작해서 자기예술을 즐기는 것이 궁극적 목표가 되는 것이다. 가상현실연극에서는 누구든지 셰익스피어나 브레히트가 될 수 있다.

앞으로 가상현실연극을 뒷받침할 만한 환경만 조성된다면 이 상품은 국제경쟁력을 갖춘 문화사업이 될 것이다. 극단 대중이 <캣츠>의 저작권 문제로 공연 중단의 위기를 맞은 것은 옛 이야기가 될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캣츠>가 국내 극장에 가상현실로 재현될 테니까.

홍란주 <동아닷컴 인터넷기자> wildran@m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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