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적 의미
2차대전 이후 과학 활동의 주요 경향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거대과학(Big Science)'의 등장이다. 2차대전 전에는 개인이나 소집단 차원의 연구가 주를 이룬 반면, 그 뒤로는 수 천 명에 이르는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값비싼 장비들을 이용해 단일한 연구 목적의 달성을 위해 협동작업을 하는 형태가 주류를 이뤘다.
그 계기는 2차대전 중 원자폭탄의 개발을 위해 추진됐던 ‘맨해턴 프로젝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미 소간의 체제 대결과 냉전, 이에 따른 막대한 국방연구비 투자 속에서 거대과학의 경향은 계속 유지됐다. 과학의 무한한 힘에 대한 신뢰와 미래에 대한 낙관적 태도가 지배적이었던 전후 호황기의 과학기술정책 역시 이런 경향을 뒷받침했다.
구체적으로는 인간을 달 위에 올려놓은 ‘아폴로 계획’, 미 항공우주국(NASA)이 우주개발을 위해 추진한 ‘허블 우주망원경 계획’, 물질의 기본입자를 밝혀내기 위해 세계 최대의 입자가속기를 건설하려던 ‘초전도 슈퍼콜라이더(SSC) 계획’ 등이 해당된다. 인간 유전체의 모든 염기서열을 규명하고자 현재 진행중인 ‘인간게놈 프로젝트’도 이들과 궤를 같이 한다.
이런 거대과학 지향은 1980년대 미국 경제가 불황에 빠지고, 90년대 들어 사회주의권 몰락에 따른 국방 연구의 퇴조로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1993년 미 의회 결의로 초전도 슈퍼콜라이더 계획에 대한 정부지원을 철회한 사건이다. 더 이상 거대과학은 수 십억 달러에 이르는 예산을 무제한적으로 지원받는 특권적 지위를 누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거대과학의 경향에 대한 반감이 커진 90년대에 들어서도 인간게놈 프로젝트는 몰락의 길을 걷지 않고 지속될 수 있었다. 이는 몇 가지 이유로 설명될 수 있다. 우선 인간게놈 프로젝트는 과거와는 다소 다른 유형의 거대과학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다른 거대과학 연구는거대한 실험 장비를 중심으로 중앙집중적 관료적 위계적 조직형태로 이뤄졌다. 반면 게놈 프로젝트는 연구비의 전체 규모는 ‘거대’하지만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여러 과학자집단에게 연구비 지원을 하는 분산적인 형태에 가깝다. 따라서 과학자 공동체 내에서 프로젝트의 추진 의의에 대한 합의도출이 좀더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또한 예상되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혜택이 분명치 않은 초전도 슈퍼콜라이더 계획의 경우와는 달리, 게놈 프로젝트는 당장 의료 분야에서 ‘응용’되어 엄청난 가시적 성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는 점은 대중적인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보다 거대과학으로서의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자본의 논리’다. 1990년대 들면서 체제 대결 의식이 엷어진 후 그 빈자리를 채운 경제적 이윤추구 때문이다. 이미 세계 유수의 생명공학회사들이 그 자체로는 무용지물인 유전자 지도그리기 단계를 넘어서 엄청난 상업적 가치를 지닌 유전자 해석 작업에 골몰하고 있는 것, 기능이 밝혀진 유전자에 대한 특허를 출원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사실 등이 이를 잘 보여 준다. 2003년에 완료될 것으로 예상됐던 염기서열 규명 작업이 3년 이상 앞당겨진 배경에 ‘셀레라 게노믹스’라는 민간기업이 있었다는 점도 이런 해석에 신빙성을 더한다. 이제 거대과학은 이제 과거와는 다른 거대 역사 속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김명진(경기대 강사·기술사)
■의학사적 의미
휴먼게놈프로젝트의 성과로 이제 질병은 DNA 이중나선 위에 자리잡게 됐다. 이는 18세기 근대병리학의 등장 이후 서양 근대의학사를 관통한 생의학적 환원주의의 절정을 뜻한다.동서양의 전통 전통의학 체계는 질병을 체액 혹은 신체 기능에너지의 불균형에 의한 전신(whole body)의 이상으로 보았다. 하지만 18세기 이후로 질병은 장기(organ) 이상의 문제로, 19세기 말에는 병적 변화를 일으킨 세포의 이상으로 좁혀졌다. 20세기에 들어서 전자현미경의 발달로 미토콘드리아와 같은 세포 소기관의 이상 여부가 대두되기도 했다. 이제 휴먼게놈프로젝트가 낳은 성과는 질병의 본질을 유전자로까지 환원시킨 것이다.
해부병리학의 발달이 많은 부검과 임상자료의 종합으로 가능했다면 세포병리학은 보다 발전된 현미경과 조직염색법의 결과였다. 이제 휴먼게놈프로젝트의 성과로 얻어진 분자병리학의 도구는 염기서열 분석기와 DNA칩, 그리고 유전정보를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는 고성능 컴퓨터와 수학이론이다.
도구는 다르지만 이를 관통하고 있는 사상은 같은 것이다. 신체의 고통이 유기체의 관찰 가능한 이상이나 결손에서 기인한다는 전제가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해부병리학과 세포병리학은 이상이 생긴 장기나 부위를 적절히 제거하면 치료된다는 외과적 치료술에 근거를 제공했다. 분자병리학은 이상이 있는 DNA 부위를 제거하거나 다른 유전정보를 삽입하여 치료한다는 유전자 치료에 근거가 되고 있다. 세포병리학이 사람을 ‘생물’로 다루었다면 분자병리학은 사람을 ‘분자’로 다룬다고 볼 수 있다.
‘분자의학’의 결과가 임상에서 어떻게 반영될 지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몇 가지 가능성은 추측해볼 수 있다. 먼저 긍정적 측면 중 하나가 진단 및 치료의 과정이 쾌적해 질 수 있다는 점이다. 피 한 방울, 혹은 머리카락 한 올이면 그 사람의 전 유전정보를 파악하여 진단에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개개인의 유전적 특성에 따라 치료약물을 조절하거나 특정 질병의 발병 확률을 미리 예측하여 예방책을 강구하는 이른바 ‘맞춤의학’도 가능해진다.
동시에 부정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의 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머리카락 하나로 모든 유전정보를 분석할 수 있는 정부기관이라면 유전정보로 개개인을 통제할 수 있다. 거기까지는 안 가더라도 산업체와 기업에서는 고용 신체검사를 할 때 특정 암의 발병률이 높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배제할 것이다. 이 때문에 부모가 유전적으로 바람직한 아이를 갖고 싶어할 것이다. 인간의 생식 과정에 대한 과학기술의 통제도 더욱 심화되는 것이다. 영화 ‘가타카’(1997년작)가 보여줬던 멋지고 우울한 신세계의 문이 막 열린 것이다.
권복규(가천의대 교양학부 강사·의학사)
■철학적 의미
'비만 유전자’ ‘동성애 유전자’ ‘모성애 유전자’…. 지난 몇 년 동안 이런 표제어들이 전문 학술지에서도 심심치않게 등장했다. 이는 인간 게놈의 염기서열을 완전히 해독한 것이 질병에만 관계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완결을 계기로 인간 행동의 유전적 기초에 관한 연구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 시점에서 간과해선 안될 것은 인간 ‘본성(nature)’에 대한 탐구가 이렇게 게놈 연구와 밀접히 연관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철학자나 신학자가 아니라 생물학자의 손에 넘어온 것은 다윈(Darwin)의 등장부터다. 그는 신체기관뿐 아니라 복잡한 행동이나 심리 기제(mechanism)가 왜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자연선택론으로 설명하려 했다.
이같은 시각은 개체군의 유전자 빈도 변화를 계산하는 ‘집단유전학’(1930년대), 진화론을 행동 연구에 적용한 ‘사회생물학’(1960∼70년대), 진화론을 심리 연구의 기초로 삼는 ‘진화심리학’(1980∼90년대)을 거치면서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잡아 왔다. 이런 패러다임은 이제 인간게놈프로젝트와 손잡고 인간의 본성을 오랜 진화과정을 겪어 온 유전자의 관점으로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게놈을 두려워하는 인문학자도 적지 않다. 이들은 인간 본성을 유전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유전자가 행동을 결정한다’는 식의 ‘유전자 결정론’을 깔고 있다고 본다. 이는 궁극적으로 ‘현상태(status quo)’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한다고 비판한다. 이어서 인간의 행동이 생물적 요인보다 사회적 환경에 의해 좌우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유전자 공포는 과학적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사회적(환경적) 결정론’ 탓이다. 그러나 유전자가 행동을 결정한다고 주장하는 명망 있는 학자를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생물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행동이나 심리기제 등이 하나 혹은 다수의 유전자와 환경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해 산출된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많은 인문학자들이 유전자를 두려워하는 까닭은 몇 가지 개념적 혼동 때문이다. 우선 이들은 유전자에 대한 담론이 결국 인간 본능에 관한 것이며, 따라서 인간 행동이 교정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어떤 행위가 ‘자연스럽다’는 것과 그 행위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은 같은 뜻이 아니다. 예를 들어 데이트를 할 때 남자가 여자에 비해 상대방의 몸매에 더 신경을 쓰고 또 그럴만한 진화(유전)적 이유가 있다고 치자. 하지만 이것이 남자의 태도를 고칠 수 없다는 주장과 같은 것은 결코 아니다. 이는 최근 출간한 ‘강간의 자연사’를 통해 남자 유전자에 강간 본능이 내재되어 있다는 주장으로 논쟁을 불러일으킨 진화심리학자 랜디 손힐(Randy Thornhill) 교수조차 누차 강조했던 바다.
또한 게놈 이야기를 꺼리는 이들은 유전자를 강조하면 도덕의 근거가 위협받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로부터 가치를 이끌어내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친구보다 친족을 더 보살피게 만드는 진화(유전)적 이유가 있다는 사실로부터 그 행위가 도덕적으로 좋다거나 나쁘다는 식의 가치판단이 도출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제국주의를 옹호한 사회진화론이나 파시즘의 인종주의를 정당화한 우생학 등 생물학이 정치적으로 오용된 역사를 떠올리면 이들의 우려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인간 행동을 유전적으로 이해하려는 본격적인 연구가 첫발을 내딛었다. 역사의 교훈은 깊이 새기되 개념적 혼동을 피하는 전향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미래의 역사가들은 서기 2000년을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했던 1859년과 함께 인류 역사의 기념비적인 해로 평가할 것이므로.
장대익(서울대 과학철학협동과정 박사·생물철학)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은'?
과학사학 및 과학철학의 전문적 교육과 연구를 위해 1984년 대학원 과정으로 개설돼 석사 44명과 박사 7명을 배출했다. 현재 석사과정 30여명과 박사과정 20여명이 재학 중. 과학사학과 과학철학 외에도 ‘과학사회학’ ‘과학정책’ ‘과학기술과 사회’ 등의 분야에서 전문학자가 되려는 학생과 행정기관 연구기관 산업체 언론 등 각 부문에서 과학과 관련된 일에 종사할 인재들을 위한 교육도 일부 담당하고 있다. 졸업생들은 대부분 교육 및 연구기관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