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음성사서함을 누군가 엿듣고 있다.

  • 입력 2000년 7월 4일 17시 43분


H대에 재학중인 최모(25,남)씨는 최근 장난삼아 들어본 애인의 휴대전화 음성사서함 때문에 맘고생이 크다. 왠 남자가 애인의 음성사서함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정스럽게 남겨 놓은 것이 아닌가.

"누군지 몰라서 답답하지만, 음성사서함을 엿들은 것에 대해 불쾌해 할까봐 물어보지도 못하고 있다"는 김씨는 "애인의 음성사서함을 엿듣기는 너무나 쉬웠다"고 말한다.

이처럼 가까운 애인이나 가족간에도 불쾌감을 주는 음성사서함에 대한 도청은 특별한 기술이나 장비가 없이도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다.

휴대전화를 2년정도 사용하고 있는 김모(23,여)씨는 최근 음성사서함에서, 처음 듣는 애인의 음성메시지가 '새로운 메시지'가 아니라 '저장된 메시지'로 전환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무척 당황스러웠다.

누군가 김씨의 음성사서함을 열고 먼저 메시지를 확인한 것이다.

또 사내커플로 남몰래 연애를 하는 이모(27,여)씨도 회사동료의 음성사서함 도청으로 비밀이 알려지는 난처한 경우를 경험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동료가 회사의 인터넷게시판에 음성사서함의 내용을 공개한것.

개인 사생활 보호의 중요성이 어느때보다도 강조되는 요즘, 휴대전화의 음성사서함에 대한 도청사례가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동아닷컴 취재팀은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무작위로 추출한 125명의 휴대전화 사용자를 대상으로 전화를 사용한 음성사서함 도청가능성 테스트를 실시했다.

SK텔레콤(011), 한국통신 프리텔(016), 신세기통신(017), 한솔엠닷컴(018), LG텔레콤(019) 가입자를 회사별로 25명씩을 선정하여 음성사서함 도청을 시도해본 결과 125명중 76명(60%)의 음성사서함을 도청할 수 있었다.

회사별로는 017이 25명중 22명(88%)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011이 20명(80%), 018이 18명(72%), 016이 14명(56%), 019가 2명(8%)순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음성사서함이 쉽게 도청되는 이유는 음성사서함 확인시 기본적으로 이용자의 휴대전화를 이용하도록 되어있으나, 자신의 휴대전화를 방전이나 분실 등으로 사용하지 못할 경우 다른 전화로도 청취가 가능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음성사서함을 확인할 때에는 비밀번호를 누르게 되어있지만, 대부분의 이용자는 구입초기에 설정된 비밀번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즉, 휴대전화 번호만 알고 있다면 대부분의 가입자가 전화번호의 마지막 4자리 또는 0000을 비밀번호로 쓰고 있기 때문에 타인의 음성사서함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낮은 도청률을 보인 LG텔레콤 019의 경우는 음성사서함의 청취방식이 도청하려는 휴대폰 번호로 전화를 건 후 '3'번(별도의 안내없음)을 누르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이용자가 휴대폰을 꺼놓거나 받지않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도청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에반해 다른 이동통신업체들은 음성사서함 운영체제의 변환보다는 이용자에 대한 홍보를 대안으로 삼고 있다.

신세기통신 김동우(홍보팀)대리는 "피해가 발생한다면 치명적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인터넷 홈페이지,신문광고,정기소식지 등에 지속적인 비밀번호 변경안내를 하고 있지만, 고객들이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 했다.

SK텔레콤 원홍식(홍보팀)씨 또한 "구입시 대리점에서의 비밀번호에 대한 안내가 충실히 이루어지고 있다"며 "음성사서함의 비밀번호 부여를 귀찮아하는 고객의 인식이 전환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건일/동아닷컴기자 gaegoo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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