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화면은 꽤 어둡다. 그래도 초원이나 사막이라면 별로 무섭지 않다. 탁 트인 공간에서야 적이 몰려와도 유인해서 처리하면 되고 정 사정이 급해지면 도망칠 수도 있다. 하지만 지하 묘지나 성당 같은 데로 들어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띄엄띄엄 있는 횃불이나 촛불 주위는 굉장히 밝고, 나머지는 바로 옆이 아니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다. 출렁이는 어둠 속에서 여러 소리가 들린다. 보물 상자나 관 뚜껑을 열 때의 삐걱거리는 소리, 항아리를 깰 때의 파열음, 그리고 적의 소리가 있다. 보이지 않는 적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온다. 잔뜩 화가 나있기도 하고, 비웃기도 한다.
수도원 지하 묘지쯤 되면 엄청나게 복잡한 미로가 펼쳐진다. 지하 묘지는 수없이 많은 방과 좁은 복도로 이루어진 어두운 공간이다. 방에는 문이 있다. 어떤 문은 내 뜻과는 상관없이 덜컥 열린다. 그리고 적이 쏟아져 나온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소리쳐도 어둠이 끝날 때까지 두려움은 끝나지 않는다. 다른 문은 조용하고 평온하다. 내가 열기 전에는 그 속에 숨겨진 피와 전율은 깨어나지 않는다. 그 문을 열 것인가,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갈 것인가는 어디까지나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물론 게임을 그만둘 생각이 아니라면 언제까지나 도망갈 수는 없다. 문을 열어야 한다. 하지만 미룰 수는 있다.
게임의 공포는 자기 자신이 만드는 공포다. 공포 영화와는 다르다. 눈앞에서 내 의지와 무관하게 펼쳐지고, 그 동안만 눈 딱 감고 버티면 지나가 버리는 공포가 아니다. 게임의 공포는 나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 공포를 극복할 지, 아니면 처참한 죽음을 당할지 역시 나에게 달려있다. 그것이 게임의 공포다.
어둠 속을 헤매며 무서워한다. 그리고 가끔은 죽어서 내 자신의 시체를 찾으러 간다. 이건 모두 나의 선택의 결과다. 그러니 선택은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신중해도 죽음의 위협, 그리고 죽음보다 더 무서운 공포를 완전히 걷어버릴 수는 없다.
그래도 문을 연다. 공포에의 초대를 받아들이기로 선택한다. 공포는 치명적인 매혹이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끌리는 걸 어쩔 수가 없다. 강요받는 건 아니고, 무엇에 홀린 것도 아니다. 절대 죽지 않을 자신이 있는 건 더욱 아니다. 나는 기꺼이 간다. 그리고 문을 연다. 아름다운 붉은 공포는 너무 달콤해서 거부할 수 없다.
박 상 우(게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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