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통신]이윤선/에디슨 전등의 산실

  • 입력 2000년 7월 23일 19시 15분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새너제이(San Jose)시를 보면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을 실감하게 된다. 세월은 성형외과 의사처럼 정교한 솜씨로 도시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온화한 자연환경과 기름진 옥토로 인해 ‘천국의 기쁨’이라 불리던 북 1번가. 오랫동안 이곳의 상징이었던 농산물 교역장은 지금은 간곳이 없다. 대신 하이테크 기업들이 빼곡하게 숲을 이룬다. 그 활기참과 진지함은 성형미인을 대할 때의 어색함을 잊게 만든다.

원래 실리콘밸리 지역은 과수농업으로 유명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살구는 이 지역 최고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델몬트사가 지난해 이 지역의 공장 문을 닫은 이후 ‘캐너리’라 불리던 통조림공업은 맥이 끊어졌다. 공장이 있던 곳들은 밸리의 부를 좇는 상가로 거듭났다.

이런 소박한 과거 때문에 세계 사람들은 실리콘밸리를 ‘단기간에 급조된 공업도시’ 정도로만 여긴다. 그러나 이 지역의 역사를 조금만 되짚어 본다면, 실리콘밸리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지역은 세계 컴퓨터산업의 중심에 서기 이전에도 노다지의 꿈을 좇던 ‘49ers’의 개척정신과 18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합리적 과학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었으니까.

1879년 밸리는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을 만난다. 에디슨은 실리콘밸리 폐광의 작업실에서 백열전등을 만들어냈다. 그는 이 전등을 샌프란시스코에서 출항하는 상선 ‘제넷호’에 장착했다. 이로써 북미대륙은 암흑을 벗어남과 동시에 기술혁명의 길로 단숨에 뛰어 들게 된다.

샌프란시스코 ‘콜’ 신문사는 1899년 필리핀으로부터 전투함 ‘셔먼호’가 돌아온다는 사실을 미국 최초로 무선통신을 통해 알리게 된다. 이로 말미암은 무선클럽 열병은 요즘 젊은이들의 인터넷 열풍에 버금갔다고 한다.

1912년 실리콘밸리에 살던 리 디 포리스트는 ‘신호증폭 삼극 진공관’을 발명했다. 집파리의 걸음 소리를 120배로 증폭해 군대의 행진소리처럼 들리게 한 이 발명은 라디오와 TV 레이더 녹음기 컴퓨터 등의 발명을 가져온 위대한 첫걸음이었다.

이외에도 과거 실리콘밸리 거주자들이 이루어낸 과학적 업적은 셀 수 없이 많다. 결국 실리콘밸리의 하이테크 신화는 하루아침에 급조된 것이 아니라 백년 전의 ‘과학 르네상스’와 맞물려 있었던 것이다.

이윤선(재미교포)eyoons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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