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생명코드 풀기]유전자 결함 있어도 일찍부터…

  • 입력 2000년 8월 22일 18시 38분


어떤 유전자의 결함은 병을 직접 일으키지는 않지만 특정 질병에 걸리기 쉬운 체질을 만든다.

가령 BRCA1 유전자의 결함은 직접 유방암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유전자 결함이 있는 사람이 발암 물질이나 발암성 환경에 노출되면 보통 사람에 비해 암에 걸릴 확률이 몇 배 이상 높아진다. 그러나 그런 환경에 노출되지 않으면 건강하게 천수를 누릴 수 있다.

서구에서 가장 큰 사망원인인 관상동맥 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자 중 하나인 apo A―I도 이런 종류의 유전자다.

고지방식을 섭취하는 사람들 중에도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가 높아져 관상동맥 질환에 걸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으며 관상동맥이 막히는 속도도 다르다. apo A―I 유전자에 결함이 있으면 온몸의 세포에서 사용이 끝난 콜레스테롤을 재활용하기 위해 간(肝)으로 옮기는 ‘고밀도 리포단백질 (HDL)’이 부족해져 과잉의 콜레스테롤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같은 음식을 섭취하더라도 과잉의 콜레스테롤이 관상동맥에 달라 붙어 이른 나이에 동맥경화에 걸리기 쉽게 된다. 그러나 이런 사람도 어린 시절부터 고지방식을 피하거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내리는 약을 사용하면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이런 유전자는 이밖에도 대장암, 당뇨병, 신경 정신 질환 등에서 속속 발견되고 있다. 이같은 질환은 유전자검사로 유전자 이상여부를 확인한 뒤 일찍부터 주의를 기울여 발병 위험성이 높은 환경을 피하고 크게 악화되기 전에 치료를 시작하면 건강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발병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이런 유전적 배경을 가진 사람이 취업이나 보험 결혼 등에서 불이익을 받는 일이 이미 생겨나고 있다. 태아 유전자검사법의 발달로 발병 가능성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임신 중절의 유혹에 이끌릴 수도 있다. 빠르게 발전하는 질병유전자의 연구에 발맞춰 유전정보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원칙을 설정하고 유전정보의 취득, 열람, 배포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대식(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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