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실리콘벨리통신]"벤처 메카 견학" 한국인 북적

  • 입력 2000년 8월 27일 18시 31분


각종 언어로 씌어진 간판들이 만국기처럼 즐비한 엘카미노 리엘 거리. 여기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역시 ‘비원’ ‘소공동 순두부’ ‘장모집’ ‘서울곰탕’ 등 한국식당 상호들이다. 90년대 초 이 식당들은 점심시간이면 한국 대기업의 실리콘밸리 주재원들로 인해 자리를 잡기 어려웠다. 한국의 IMF 위기로 잠시 휘청거리기도 했지만 얼마 전부터는 ‘벤처의 메카’를 찾아온 한국의 벤처인들로 다시 북적거린다.

유동인구를 포함해 이 지역 한인의 숫자는 근 10만을 헤아린다. 실리콘밸리엔 200개가 넘는 한인교회와 동창회가 있다. 한인들의 단체도 100개가 넘는다. 한국의 인기 드라마도 한국에서 방영되는 즉시 비디오가게에서 빌려볼 수 있다.

하지만 첨단산업의 도시답게 이 지역은 다른 미주 내 한인사회와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인다. 많은 한인들이 벤처기업을 경영하거나 첨단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80년대 반도체 산업의 호황으로 많은 교민들이 전자부품 제조공장에서 일했던 경험도 있다. 스탠퍼드대의 교환교수나 연구원들 역시 이곳 한인사회의 색다른 모습이다. 다른 지역에서 흔한 식료품점이나 세탁소를 운영하는 교민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다.

성공한 한인 기업가도 많다.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사로 명성을 쌓고 현재는 앰벡스사 회장인 이종문씨는 샌프란시스코 아시안 박물관에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박물관측은 이를 기념해 그의 이름을 박물관 명칭에 넣었다. 이 지역 일간지 ‘머큐리’는 실리콘 이미지의 데이비드 리, 디지털 임팩트의 윌리엄 박, 코리오의 조너선 리, 마이사이몬 닷컴의 마이클 양, 다이얼패드의 안혁덕씨를 실리콘밸리의 뜨는 한인 5인방으로 크게 보도하기도 했다.

요즘엔 정말 많은 한국사람들이 실리콘밸리를 보러온다. 방학을 맞아 줄을 잇는 대학교수들은 물론이고 한국에서 좀 한다 하는 인사들은 모두 이곳을 다녀간다. 이들은 한결같이 “첨단의 기술과 혁신적인 벤처정신을 배우러 왔다”고 한다. 그리고는 짜여진 관광일정인 양 스탠퍼드대에서 특강을 듣고 몇몇 기업과 정부기관들을 시찰하고 간다. 열이면 일곱 정도가 그런 모습이다.

물론 평범한 아줌마인 나는 고국에서 온 높은 양반들이 그렇게나마 실리콘밸리의 공기를 숨쉬고 그 정신을 접하고 가는 것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분들을 보면서 자꾸 뭔가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이윤선<재미교포>eyoons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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