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삼국지다. 간악하지만 매력적인 조조, 지금도 일부 지역에서 신으로 섬겨지는 관우, 시대를 잘못 만난 풍류남아 주유, 너무나 완벽한데도 미움받지 않는 공명 등 다채로운 개성의 수많은 영웅들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게임으로 삼국지를 하는 맛도 여기에 있다. 책에서나 보던 영웅들을 직접 움직일 수 있다. ‘삼국지’는 정말 대단한 캐릭터 게임이다. 캐릭터들의 유명세만으로도 벌써 몰입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뛰어난 캐릭터성은 족쇄이기도 하다. 인기있는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소재로 한 게임은 대부분 빈약한 게임성으로 악명이 높다. 캐릭터의 매력만 믿고 정작 게임에는 소흘했기 때문이다. 삼국지를 소재로 한 게임은 정말 많다. 하지만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를 따라올 게임은 없다.
난세의 군주는 할 일이 많다. 군사를 뽑고 훈련시키면서 농경지 개간과 상업 발전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어떻게든 인재를 끌어오고 민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때로는 적군에 유언비어를 퍼뜨리거나 첩자를 보내는 일도 필요하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공명이 말했듯이 여러 세력들 사이의 균형이다. 전체 세력 판도를 읽고 때로는 과감하게, 때로는 신중하게 전략을 펼친다. 정말 난세를 헤쳐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군과 적군의 장수들도 생명을 얻는다.
코에이의 ‘삼국지’가 다른 아류들을 모두 따돌린 건 뛰어난 시스템과 돋보이는 캐릭터성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나온 7편에서는 6편까지와 달리 유비나 조조, 손권 등 군주뿐 아니라 어떤 인물로도 플레이가 가능하다. 제갈 공명이 돼 삼고초려를 거절할 수 있고 사마의가 유비 밑에 들어올 수도 있다. 이쯤 되면 캐릭터성은 빛을 잃는다. 내가 움직이는 인물은 더 이상 영웅이 아니다.
하지만 새로운 재미가 생긴다. 전투에서 남의 전공을 가로채는 것도 신나고 세도가의 집 문턱이 닳도록 찾아다니며 인맥을 쌓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그것도 아니면 여기저기 떠돌며 무심히 난세를 유람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삼국지 읽기’가 아닌 ‘삼국지 플레이’는 새로운 느낌이다. 전장에서 자기 공만 탐해서 대세를 그르치거나 민중의 고통은 아랑곳 않고 부귀영화만 추구하던 무리들의 심정을 알 것도 같다. 게임에서 영웅이 될 수 없다 해도 재미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박상우(게임 평론가)
SUGULMAN@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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