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휴대전화와 집으로 수없이 전화를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아 기자는 몸이 달았다.
불안한 마음에 ‘약속시간’보다 조금 앞서 서울 도봉구 창동의 아파트 초인종을 누른 것은 23일 오후 4시40분. 아직 잠에서 덜 깬 얼굴의 양일환(30) 정환씨(26) 형제는 기자가 예정보다 20분 일찍 들이닥치자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다. 방 한구석에서 며칠간 밤샘 작업을 한 끝에 ‘소리바다 1.8버전’을 완성하고 아침에야 겨우 잠이 들었단다.
“1.8버전은 사용자들이 게시판에 올린 불만사항을 개선한 일종의 패치버전입니다. 쪽지보내기 기능을 만들었고 ID를 도용할 수 없게 조치했어요. 또 이전에는 음란물도 확장자를 MP3인 것처럼 위장하면 주고받을 수 있었는데 1.8에서는 정말 음악파일이 아니면 다운로드할 수 없게 했죠.”
일환씨는 기능이 완전히 개선된 2.0버전이 올해 안에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리바다는 다른 사람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들어있는 MP3 파일을 인터넷을 통해 공유할 수 있게 한 P2P프로그램. 한국판 냅스터인 셈이다. 같은 시간에 인터넷에 연결돼 있는 회원들의 하드디스크를 모조리 뒤져 MP3파일을 검색해준다. 올해 5월 0.9버전이 처음 나오자 하루만에 가입자가 1만명을 넘어섰고 현재는 회원이 110만명에 달한다.
MP3 검색엔진을 종류별로 확보하고 불법무료 MP3사이트 주소를 줄줄이 꿰고 있어도 원하는 곡을 찾기 쉽지 않았던 음악 마니아들에게 소리바다는 ‘복음’이라고 할 만하다.
“음반을 구할 수 없는 희귀곡을 찾아내면 정말 기쁘거든요. 좋은 곡은 나누고 싶고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은 자연스러운 소망이 이뤄지는 장을 제공하는 거죠.”
가끔 컴퓨터로 음악을 만들기도 하고 전자기타 연주도 하는 양씨 형제 자신들도 헤비메탈 마니아다.
가족과 함께 89년 미국에 간 양씨 형제는 둘 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 일환씨는 버지니아공대, 정환씨는 컬럼비아대 출신. 일환씨는 게임 회사에 잠깐 취직한 적이 있지만 97년 정환씨가 대학을 졸업한 후 함께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오고 있다. 한국형 MP3플레이어 ‘소리통’도 이들의 작품이다.
“소리통은 돈이 될 뻔 하기도 했죠. 한 미국업체와 제휴해 소리통소프트웨어를 상품화하려고 했었는데 AOL이 그 회사를 인수하면서 무산됐어요.”
지난해 5월 한국에 돌아온 이들은 앞으로도 계속 국내에서 활동할 계획이다. MP3가 교환되는 양이나 네티즌의 인식, 음질 등을 볼 때 MP3시장은 한국이 세계 최강이라는 것.
이들이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역시 저작권 문제다. 최근 미국음반협회는 냅스터에 소송을 제기했고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소리바다를 문제삼고 있다.
“회원들이 개인적으로 자신의 파일을 주고받는 것이지 소리바다 운영자가 따로 곡의 목록을 관리해 유통시키는 것은 아니니까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해요. 상업적인 프로그램도 아니구요.”
양씨 형제는 궁극적으로 음악과 관련있는 다양한 집단에 모두 이익이 되는 사업 모델을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저작권 단체들과 합법적인 기술이용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겠죠. ‘나눔’이라는 인터넷의 기본정신을 합법적으로 살릴 수 있는 사업방식을 고민하고 있어요.”
일환씨는 또 인터넷 환경이 더 발달하면 음악이 전해지는 통로가 완전히 새로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오디오 주변기기까지 네트워크화 되는 추세니까요. 음반과 방송매체를 통해 음악을 접하는 전통적인 방식 외에 온라인으로 음악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다양한 망들이 생겨날 것이라고 봅니다.”
소리통과 소리바다의 선풍적인 인기로 양씨 형제의 이름이 알려지자 사업제휴나 투자제안이 쏟아지고 있다.
“기술이사(CTO)로 들어오라거나 매신저 프로그램에 접목하는 제휴계약을 체결하자는 제안이 많았어요. 회사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 거절했습니다.”
정환씨는 최근 ‘의미있을 것 같은 솔깃한 제안’이 들어오고 있다며 모업체와 상당히 진지하게 논의가 오가고 있다고 귀띔했다.
소리바다1.8버전은 웹사이트(www.soribada.com)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김승진기자>sarafina@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