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 인식하는 '생물소자' 개발… 서강대 연구팀 세계 최초

  • 입력 2000년 12월 6일 18시 55분


2020년 어느 날. A씨는 교통사고로 눈의 망막이 파열돼 영영 세상을 볼 수 없게 됐다. 병원은 망막의 손상 부위에 생물소자를 이식하자고 권한다. 5시간 동안의 대수술 끝에 그의 망막에는 생물소자가 이식됐다. 며칠 뒤 귀여운 자녀와 부인을 볼 수 있게 된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공상과학소설에만 나올 법한 이런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가 우리나라에서 나왔다. 색채까지 인식하는 ‘생물소자’가 서강대 연구팀에 의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됐기 때문이다.

카메라의 망막에 해당하는 전하결합소자(CCD)는 무기물 소자여서 부작용 때문에 우리 눈에 이식할 수 없다. 하지만 이번에 개발된 소자는 생체분자로 제작돼 실용화될 경우 맹인이 눈에 이식해 세상을 보게 할지도 모른다.

서강대 화학공학과 최정우 교수와 최현구 연구원, 코넬대 민준홍 박사는 과학기술부 뇌과학연구사업의 지원 아래 생체분자인 로돕신과 플래빈을 샌드위치처럼 쌓아 빛을 감지하는 소자를 만들었다. 이 소자는 관측 대상 물체에서 온 빛을 전기신호를 바꾼다.

연구팀은 이 신호를 우리의 뇌와 구조가 흡사한 신경망 컴퓨터로 비교 분석함으로써 물체의 형태는 물론 일곱가지 무지개 색깔을 모두 인식하는 데 최근 성공했다.

연구팀은 박테리아의 세포벽에 존재하면서 빛을 감지하는 박테리오로돕신이란 단백질로 이 소자를 만들었다. 인간의 망막 세포에도 있는 로돕신은 초록, 노랑, 주황, 빨강 빛을 전기신호로 바꿔 뇌에 보내는 구실을 한다.

로돕신을 이용한 빛 감지 생물소자는 1993년 일본 후지필름 연구팀이 처음으로 개발했으나 한가지 색깔의 이미지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서강대 연구팀은 호흡에 관여하는 생체분자인 플래빈을 여기에 덧붙여 보라, 남색, 파란색까지 감지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단백질로 소자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생물소자는 획기적인 것이지만 아직 성능은 초보적 수준이다. 가로 세로 각각 1인치 크기인 이 소자에는 빛을 감지하는 생체분자 집합체가 9개 붙어있다. 사람의 눈에 무려 1억 개나 되는 시각세포가 있는 것과 비교하면 형편없는 해상도이다.

최 교수는 “그러나 여러 가지 기술적 난제가 해결돼 생체분자 하나로 하나의 픽셀을 만들 수 있게 되면, 현재 카메라용 전하결합소자(CCD)보다 최대 1만 배나 해상도가 뛰어난 인공 시각을 구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꿈을 이루려면 DNA 전선 같은 분자 크기의 전선이 개발돼야 하고, 분해되지 않는 안정성 높은 생체분자가 필요하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면 20년 뒤에는 사람같은 고도의 지능을 가진 생물소자가 실리컨 반도체를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미국, 일본에서는 로돕신 단백질을 이용해 시각소자 외에도 초고집적 기억소자와 전자잉크도 개발 중이다. 이는 자주 빛의 로돕신이 빛을 받으면 노란색으로 변하는 것을 이용해 정보를 기억하고 읽는다.

<신동호동아사이언스기자>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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