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사이트가입에 왠 주민번호요구"

  • 입력 2000년 12월 25일 19시 38분


30대 직장인 K씨는 인터넷 자선 사이트에서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려다 울화가 치밀어 돌아섰다. 큰 돈을 내는 것도 아닌데 사이트쪽에서 주민등록번호를 비롯 미주알 고주알 신상정보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랬는데….” K씨는 불우이웃 돕기를 명분으로 이용자 정보를 수집하려는 사이트의 ‘상업주의’가 괘씸했다.

이용자에게 지나치게 세밀한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사이트가 늘면서 네티즌과의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불우이웃돕기나 게임, 심심풀이 정보서비스 등 본인확인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서비스들까지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중국음식을 시킬 경우 음식값만 치르면 되지만 온라인상에서는 주민등록번호를 제시해야 자장면을 먹을 수 있다.

특히 외국인에게 이런 관행은 괴롭다. 외국인 A씨는 인터넷 사이트의 주민등록번호 요구 관행 때문에 회원제 인터넷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화를 표방한 인터넷 업체들이 스스로 발목을 잡고있는 것. 미국 LA의 재미교포 C씨도 국내 동창회 사이트에 가입하던 중 초등학교 시절까지 사용했던 주민등록번호를 기억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등록된 주민등록번호가 노출될 경우 심각한 피해가 우려된다는 점에서 지나친 개인정보 수집은 자제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주민등록번호 요구 실상〓사실상 거의 모든 회원제 사이트가 요구하고 있다. 통합메시지서비스, 동창회 사이트, 쇼핑몰, 온라인게임, 인터넷 성인방송 등 웬만한 인터넷 사이트는 이용시 주민등록번호 등 신상정보 제출을 의무화하고 있다.국내 닷컴기업간의 회원확보 경쟁이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인터넷상에는 실명 주민등록번호 사냥만을 목표로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유령 서비스들도 있다.

무료메일 서비스 다음이나 야후, 라이코스 등은 이름과 생년월일 정도만으로도 가입이 가능해 예외적인 케이스. 다음의 관계자는 “주민등록번호의 경우 허위 기재가 많아 고급개인정보로서의 의미도 없고 가입자들도 달가워하지 않아 요구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가입절차가 간단한 해외사이트〓반면 마이크로소프트의 핫메일이나 다운로드 서비스 등 해외서비스의 경우 가입절차가 매우 간편하다. 미국에서는 주소와 이름, 메일주소 정도만 기입하면 거의 모든 사이트에 가입할 수 있다. 쇼핑몰 등 전자상거래 서비스의 경우만 신용카드번호와 물건 배달을 받을 집주소를 입력해야 한다. 일본에서도 이름과 거주도시, 생년월일만으로도 인터넷 회원제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 무료 인터넷폰 서비스를 제공하는 D서비스의 경우 미국용 서비스는 이름과 메일주소만으로도 가입이 가능한 반면 국내용 서비스는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해 가입에 차등을 두고 있을 정도.

▽문제점과 해결책〓쓸데없이 주민등록번호를 받아놓았던 사이트가 최근 해킹을 당하면서 이용자들이 엉뚱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가짜 주민등록번호 사용도 조장되고 있다.정보통신진흥협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인터넷 사이트에 제출된 주민등록번호 10건중 4건은 허위번호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고객정보 보호 차원에서 가입회원에게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할 수 있는 사이트를 전자상거래와 성인정보 사이트로 엄격히 제한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주민등록번호 대신 생년월일을 제출하거나 주민등록번호 13자리중 맨 뒷자리수를 뺀 12자리 숫자만을 활용하는 방안도 대안이다.

<김태한기자>free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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