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을 맞았어요.”
“어디에 맞았나요?”
“눈…아아….”
최근 최면을 통해 스타의 전생을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이 인기이다. 전생에 17세기 스위스 병사였다는 국내 인기 그룹의 한 멤버는 당시를 기억하며 고통스러워한다. 너무나 실감나는 모습에 방청객들의 탄식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전생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인물은 누구인가요?”
“잔다르크.”
아쉽게도 전생 체험이 허구임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잔다르크는 15세기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실제 있지도 않았던 일들이 마치 기억처럼 떠오를 수 있을까?
“최면에서 만들어진 기억들은 너무나 생생하게 경험되기 때문에 당사자는 그것을 진짜 기억이라고 철썩 같이 믿는 경우가 많다.” 대한최면치료학회 회장인 신경정신과 전문의 변영돈 박사의 설명이다.
최면이란 의식이 약하고 무의식이 활동하는 상태이다.
잠과 다른 것은 의식이 여전히 깨어 있다는 것. 따라서 최면 상태에서도 최면술사와 대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최면 상태에 들어가면 자기만의 세계에 몰입하게 된다. 이때 최면술사의 암시와 유도를 받으면 잊은 줄로 알았던 예전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변 박사는 “최면 상태에서는 기억력이 좋아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다만 책이나 TV에서 본 장면이 자신의 경험과 재구성되면서 기억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특히 최면술사의 암시가 기억의 내용에 큰 영향을 준다.
최면을 통해 전생 체험을 유도하고 있는 신구대 경영학과 김영국 교수도 “전생이 있다고 전제하지 않으면 전생 체험을 할 수 없다”고 인정했다.
프로그램을 자세히 보면 실제로 연예인들이 펼치는 이야기가 김 교수의 유도 방향에 따라 전개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실제 외국에서는 최면이 만들어 낸 거짓 기억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건이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베스 러더포드라는 한 여성은 최면을 통해 어린 시절 아버지가 지속적으로 자신을 강간했고 2번이나 유산시킨 사실을 기억해 냈다. 결국 그녀의 아버지는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뒤 행해진 신체검사결과 그녀는 당시까지 숫처녀인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워싱턴대 심리학과 엘리자베스 로푸터스 박사는 “최면 상태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를 다르게 기억하도록 유도될 수 있다”며 “심지어는 전혀 일어나지 않은 사건조차 ‘생생히’ 기억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때때로 범죄 혐의자는 목격자의 잘못된 증언을 바탕으로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범행을 기억해 내서 자백하기도 한다.
미국 윌리엄스대 사울 카신 교수팀의 실험은 기억이 얼마나 외부의 영향을 받는지를 잘 보여준다.
연구자들은 컴퓨터를 일부러 고장낸 뒤 엉뚱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워 보았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고 펄쩍 뛰었지만 주위에서 그가 고장내는 장면을 똑똑히 봤다고 계속 우기자 상당수가 혐의를 인정했고 몇몇은 자신이 어떻게 하다가 고장을 냈는지도 설명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 연구자들은 먼저 기억을 강요하는 주위의 압력이 기억을 만들어 내게 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기억을 해내려고 애를 쓸 때나 사건의 진실성을 깊이 생각하지 않을 때 쉽게 거짓 기억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강석기동아사이언스기자>alchimist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