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리 다쳤는데 뇌CT촬영하다니…

  • 입력 2001년 2월 4일 18시 36분


정형외과 전문의 김모씨(34)는 경기 수원의 A병원에 취직한 지 1년도 안돼 사표를 던졌다. 다리만 다친 환자에게는 필요없는 뇌 CT(전산화단층촬영술)와 MRI(자기공명영상)를 찍으라는 병원장의 지시를 몇 차례 거부했다 호된 질책을 들었기 때문이다.

X선 촬영이나 초음파 검사만 해도 충분한 환자에게 CT, MRI를 마구 찍는 병원이 많다. 의사의 권유에 따라 큰 맘 먹고 CT, MRI 검사받았지만 ‘정상’ 판정을 받은 뒤 ‘뭔가 속았다’고 생각하는 환자도 적지 않다. 왜 그럴까? 합리적인 검사를 받을 수는 없을까?

▽보유율 세계 1위〓우리나라의 CT, MRI 보유율은 인구 100만명당 6.38대. 영국의 46배로 세계 1위다. 특히 보건복지부가 ‘고가 의료장비 승인제’를 폐지한 뒤 CT, MRI 보유 병원이 급격히 늘었다.문제는 생산된 지 5∼7년이 지나 외국에서 폐기처분된 중고품을 싼값으로 수입하고 있는 것이다. CT, MRI는 4∼5년이 지나면 해상도가 떨어져 정확한 검사를 적합하지 않다.

▽의사 환자 병원 모두 문제〓CT, MRI가 남발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우선 의사가 자신의 실력에 대해 자신감이 없기 때문. 실시간에 이뤄지는 초음파 판독은 의사가 문진을 통해 환자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와 의사의 실력 경험 성의에 좌우된다. 반면 CT MRI 판독은 촬영한 영상을 여유있게 검토하고 다른 의사들과 함께 볼 수 있다. 장비를 구입한 병원이 ‘본전’을 뽑기 위해 은연중 CT MRI 검사를 권유하는 것이 두 번째 원인. 일부 병원장은 CT, MRI 환자를 보내주는 의원에게 사례비를 제공하면서까지 과잉 촬영했다가 쇠고랑을 차기도 했다. 마지막은 비싼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환자 스스로 쓸데없는 검사를 요구하기 때문.

▽어떤 검사가 필요하나〓비싼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간질환은 웬만하면 초음파검사로도 충분하다. 실력있는 의사는 CT, MRI로도 발견하기 힘든 질환을 초음파로 발견하기도 한다. 또 태아의 이상 여부나 연한 조직이 많은 복부내 장기의 질환도 초음파가 유용하다.

폐렴 등 폐질환 골절 콩팥결석 등은 단순X선 촬영으로 비교적 쉽게 알아낼 수 있다. 그러나 폐암은 혹이 2㎝ 이하면 단순X선 촬영 보다 CT가 좋다. 1000명을 건강검진한 결과 단순X선 촬영은 13명, CT는 24명의 폐암 환자를 발견했다.

또 뇌출혈중 거미막밑출혈, 무의식중 움직이는 응급환자, 몸안에 금속 물질이 있어 MRI를 쓸 수 없는 환자 등도 CT가 좋다. MRI는 값은 비싸지만 안전성이 높은 것이 장점이며 뇌종양 뇌동맥류 등 뇌질환 척추질환 등에 효과적이다. 심장처럼 쉬지 않고 움직이는 장기 촬영에는 적당하지 않다.

허리가 아파 디스크가 의심된다고 무조건 MRI를 찍지 않는다. 스웨덴의 경우 디스크가 발견돼도 한 달 정도 경과를 본 뒤 상태가 호전되지 않으면 MRI를 찍는다. 발가락 발목 등이 마비되거나 아주 통증이 심하고 오래가는 경우 MRI를 찍는 것이 좋다. 경미한 디스크 환자는 문진 진찰한 뒤 경과를 보고 X선 정도만 찍는다. 대기업 임원의 건강검진시 뇌나 허리 MRI를 선택하라고 하는데 척추 MRI는 대부분 쓸모가 없다.

▽이것만은 알아두자〓의사의 지시를 받지 않고 방사선 기사가 촬영하는 것은 불법이다. 지난해 7월 이후 진료 기록 일체를 복사 요구할 수 있으며 이를 어길 경우 보건소 경찰에 고발하면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다. 또 이미 다른 병원에서 촬영했어도 해상도가 떨어지거나 검사 시기가 오래됐으면 재촬영을 할 수 있다.

MRI는 자기장의 세기가 높을수록 상위 기종. 1.5T(Tesla)에 4∼5년이 안된 신형이면 믿을 만하다. 궁금한 점이나 의문사항이 있으면 대한방사선의학회 홈페이지(www.radiology.or.kr)에 접속해 질문하면 답을 얻을 수 있다. (도움말〓연세대 영동세브란스병원 진단방사선과 정태섭교수, 울산대 서울중앙병원 정형외과 이춘성교수, 대한손해보험협회 자동차팀 이득로팀장)

<이호갑기자>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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