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황야에 번듯한 대리석 집도 있지만 거리가 멀어 마법을 써서 오가자면 돈이 꽤 들기 때문에 이 곳에서 거의 매일 밤 묵는다.
잠에서 깬 뒤 마굿간으로 가 맡겨놓은 오스타드를 꺼냈다. 도마뱀 머리, 긴 꼬리, 타조와 같은 튼튼한 다리를 가진 이 초식성의 양순한 생물은 원래 지하 세계에서 서식했는데 사람들이 잡아와 반복된 훈련으로 말처럼 탈 수 있게 만들었다.
백팩(backpack)에서 사과 몇 알을 꺼내 오스타드를 달랜다. 주인은 굶어도 상관없지만 애완 동물은 틀리다. 주인은 곧 ‘먹이를 주는 자’이기 때문이다. 볏을 흔들며 좋아하는 오스타드에 올라 길을 떠났다.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은 보물 사냥꾼. 나는 몬스터들을 사냥하면 가끔 나오는 종이조각을 보물 사냥꾼에게 보여줬더니 그는 보물 지도가 틀림없다고 단언했고, 함께 보물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님아.”
보통 이렇게 상대를 부르면 구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잠자코 있자니 계속 부른다.
“리콜 시약(이동을 위해 필요한 마법 재료) 좀 주세요.”
보아하니 시약이 없어 집에 못가는 듯 하다. 2세트를 쥐어주었다.
“이게 뭐예요, 좀 많이 줘요.”
“일해서 사요”라고 했더니 “매정하네. 세상 그렇게 살지마셍. c8”하고 욕을 하고 사라졌다. 어이가 없다.
이윽고 보물 사냥꾼을 만났다. 그는 내게 지도를 받아들고 뭔가를 열심히 옮겨적더니 차원 이동문(Moon Gate)을 열고 어딘가로 나와 자신을 이동시켰다.
앙상한 숲 속을 둘이서 부지런히 뒤졌다. 그가 좌표계를 가지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면 나와 오스타드는 부지런히 따라다녔다. 도중에 PK(살해)당한 시체를 보게 됐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나도 초보 시절엔 하루에 20차례 PK당한 적도 있다. 단지 그가 가진 물건을 빼앗기 위해 빈번히 살인이 일어난다. 최근에는 디싯(브리튼의 북동쪽 섬)에서 상대방의 마법 공격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기 위한 수련을 하다가 갑자기 나타난 여러 명의 살인자들에게 당했다. 죽으면 유령이 된다. 누군가 영혼의 기억을 토대로 나의 육체를 재생시켜줘 부활했다. 한참 고생 끝에 우리는 보물 상자를 찾아냈다.
그가 연장을 꺼내 열쇠 구멍에 쿡 밀어넣고는 이리저리 돌리자 ‘딸그락’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열렸다. 나와 그는 상자에서 멀찍이 물러섰다.보물 상자를 지키는 몬스터들이 덤벼들 것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자 뚜껑을 살짝 열자 갑자기 누렇고 거대한 몬스터가 내 눈앞을 꽉 메웠다. 오우거(Orge)중 가장 힘이 센 오우거 로드(Lord)다. 이 놈에게 두 세 방 맞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고삐를 급히 당겨 후다닥 뒤로 물러서며 곧바로 줄행랑을 쳤다.
보물 사냥꾼은 품에서 류트(Lute)를 끄집어 냈다. 조율이고 뭐고 없이 곧바로 현을 튕겼다. 상대방끼리 싸우게 만드는 마법이다. 음악을 들은 오우거 로드들은 서로 싸우다가 모두 죽어버렸다.
흡족한 마음으로 마을로 다시 돌아와 그와 보물을 나눈 뒤 작별을 고했다. 가방이 꽉 차 은행 금고에 보물을 맡겼다.
갑자기 한떼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간다. 필시 길드워(Guild War)를 하러 가는 것일 게다. 하루에도 몇 번 씩이나 길드워가 벌어진다. 특별한 이유도 없다. 그저 울온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싸움 밖에 없다는 분위기다.
모두 같은 생각, 같은 목적으로 살다보니 온라인 게임의 다양한 경험이나 재미를 느껴보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오로지 길드워에, 조금만 기분나쁘면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쌍소리 해대는 현실이 바로 한국형 울온의 현실이다. 게임 세계도 그 사회의 현실과 그다지 다른 점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이젠 PK도 거의 드물고 보물도 넘쳐나는 물자 속에서 빛을 잃어간다. 아, 풍요속의 빈곤이여.
박수만(sorceria@nownur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