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씨가 컴퓨터 마우스를 몇 차례 클릭한 것만으로 주문과 결제, 배송 추적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물류회사의 시스템과 전자상거래 회사의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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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씨가 결제를 마무리한 시점부터 물류회사는 인터넷 서점으로부터 권씨의 정보를 넘겨받는다. 또 그때부터 발생하는 모든 배송 정보도 인터넷 서점으로 넘어간다. 재고 물량을 점검한 뒤 없는 물건을 업체에 주문하는 과정을 거쳐 물건이 포장되면 물류망에 실린다. 물류망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간은 보통 오후 10시. 이때부터 대부분은 24시간 안에 물건이 고객의 손에 들어간다.
▼ 글 싣는 순서▼ |
1. 일대일(1:1) 마케팅 2. e풀필먼트 3. 사이버금융 4. 지식경영 5. e엔터테인먼트 6. 한국의 실리콘 밸리 7. e정부 8. 정보가전 |
국민 10명 중 4명이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전자상거래 시장 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전자상거래를 완성해 주는 물류시장 규모도 커지고 있다. 한국전자거래진흥원에 따르면 96년 14억원에 불과하던 전자상거래 시장 규모는 99년 9조2000억원, 2000년 17조4000억원으로 늘었으며 올해는 29조3000억원이 될 전망이다. 지난해 7조원이던 물류시장도 올해 7조8000억원이 될 것으로 업체들은 보고 있다.
예전에는 창고 관리, 트럭 수송 등 ‘먼지 냄새 나는’ 이미지로 별로 각광받지 못하던 물류 분야가 e비즈니스와 결합하면서 21세기 유망산업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시대에 다소 뒤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분야가 시스템을 통한 자동화로 무장하면서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제일제당의 물류담당 사업부서에서 98년 독립한 CJ-GLS(GLS로 약칭)는 물류 분야 가운데 기업간 물류시장(B2B)의 사업성을 크게 보고 투자를 진행 중이다.
이 회사 박대용(朴玳用)사장은 “우리는 제조업체들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귀하들은 원천 기술을 개발하고 마케팅만 하십시오. 원료를 소싱하고 보관하고 배달하는 것은 우리가 하겠습니다’라고요. 지난해 B2B 물류시장은 1조3500억원이었는데 올해는 1조5500억원으로 늘어날 것 같습니다. 한국 업체들 사이에서도 물류를 아웃소싱한다는 개념이 확산되고 있어 이 시장의 성장성은 무궁무진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회사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기업간 물류 시스템 구축을 위해 투자한 비용은 50억원. 이 회사에 물류를 맡긴 기업은 인터넷만 클릭하면 재고와 출고 상황을 점검할 수 있고 자신이 맡긴 물건이 어디에 가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전국에 30개 물류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GLS가 소유한 것은 단 두 개. 매일 2000대의 차량을 운행 중이지만 모두 협력 업체로부터 아웃소싱한 것으로 회사 소유는 한 대도 없다.
물류시장의 ‘거인’ 대한통운도 e비즈니스에 ‘목숨’을 걸었다. 곽영욱(郭泳旭) 대한통운 사장은 “온·오프라인의 결합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활의 문제”라며 “수송업체에서 발전한 종합물류회사 대한통운과 온라인의 결합은 시대적 요구로 우리 회사는 앞으로 세계적 수준의 e물류회사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대한통운은 올해 중 LG-다우사와 제휴사업을 시작한다. LG-다우사가 생산하는 자동차 범퍼나 CD 케이스용 폴리카보네이트의 원료 물량에 대한 물류 업무는 대한통운이 맡는다. 물론 공장의 창고 관리, 제품 수송, 수출, 해외 재고 관리까지도 대한통운이 총괄한다. 여기서 생산된 물량은 대만 등 아시아 10개국으로 수출된다. 말하자면 다우사의 아시아 시장 거점이 한국에 마련됐고 그 관리 업무를 대한통운이 담당하는 것이다. 대한통운은 이 업무를 통해 4년동안 400억원 가량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두 회사 모두 개인 사이(C2C) 또는 기업과 개인 사이(B2C) 택배시장도 시장성이 높다고 보고 이 시장도 선점하고자 한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의 e물류시스템은 초보 단계. 선진 시장의 경우 제조업체는 제조와 마케팅만 맡고 나머지는 대부분 물류회사가 전담한다.
예를 들어 세계적 유통회사 월마트의 물류를 맡는 프리츠는 중국에 앉아서 인근 국가의 싼 농산물을 모은 뒤 이를 전 아시아 시장에 뿌린다. 베네통은 디자인 기술만 개발할 뿐이지 생산은 아웃소싱으로, 나머지 관리는 물류회사가 한다. 북아메리카 접경지역에 2만평짜리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멕시코의 레드우드 시스템즈는 필립스의 휴대전화(보통 아웃소싱으로 만든다)가 도착하면 물류 창고에 앉아서 칩을 넣고 재포장해 아메리카 대륙 전역에 배송한다.
“우리 기업이 이 정도 수준으로 올라가려면 한계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포장 박스가 표준화돼 있지 않아 사람의 손이 많이 필요하죠. 우리처럼 땅덩어리가 좁은 나라에서는 땅을 투자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창고를 소유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도 물류비를 올리는 요인이죠. 게다가 영종도 공항처럼 물류망을 위한 인프라를 기업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 대책도 필요합니다.” 장계원 GLS 경영지원실 팀장의 말이다.
<하임숙기자>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