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이노베이션 현장을 가다-4]"일 스스로 찾아서 하도록 환경조성"

  • 입력 2001년 7월 2일 18시 59분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신혼주부 이씨는 옆집의 15년차 주부 김씨를 존경한다. 김씨는 남편의 회사동료들이 한밤에 몰려와도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반갑다는 듯 맛있는 음식을 재치 있게 만들어 대접한다. 뿐만 아니라 적은 돈으로 어디선가 좋은 옷을 사고, 남편 월급을 금융상품과 부동산 등에 굴려 수천만원의 여윳돈을 갖고 있다. 이씨는 남편이 출근하면 김씨의 집으로 건너가 차를 마시며 노하우를 배우는데 ‘취미’를 붙였다. 이씨는 가정이라는 경제단위를 운영하는 지식경영자인 셈이다.

▼관련기사▼
- [전문가 한마디]지식경영, 철저한 벤치 마킹-분석 필수

손병두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작년 지식기반경제센터 발족 때 지식경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그것을 알고 싶어 이 센터를 만드는 것이다”고 대답했다.

‘지식경영’은 기업이 구성원 개인의 지식을 발굴해 조직의 보편적인 지식으로 공유하면서 이를 활용해 경쟁력을 올리는 것으로 최고경영자(CEO)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변수로 꼽힌다. 따라서 기업의 목적이라기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 또는 기업문화로 볼 수 있다.

국내에서 가장 앞선 지식경영 모델로 꼽히는 삼성코닝의 박영구 사장은 “열린 생각을 갖고 바른 일을 하는 것”이 지식경영이라고 말한다.

박 사장은 변화 경쟁 고객이라는 경영환경 3C에 대처하는 능력을 지식이라고 본다. 이제 제품을 잘 만들기보다 시장에 새로운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경영은 말은 쉽지만 조직에서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렵다. 자신의 노하우를 모두 내놓으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고경영자는 솔선수범하며 일관된 행동과 말로 구성원에게 믿음을 주어야 한다.

▼ 글 싣는 순서▼
1. 일대일(1:1) 마케팅
2. e풀필먼트
3. 사이버금융
4. 지식경영
5. e엔터테인먼트
6.한국의 실리콘 밸리

박 사장은 “지식경영을 원하면 구성원의 실수를 관용하며 인내해야 한다”고 말한다. 구성원이 주어진 일에 머물지 않고 회사를 위해 필요한 일을 찾아서 하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수를 나무라다보면 직원들은 잘못을 줄이기 위해 일을 소극적으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박 사장은 정직이 기술과 능력에 앞선다는 신념으로 구성원이 시킨 대로 일을 했다 해도 책임을 피하지 않는 용기를 가질 때까지 2년 이상을 기다리고 있다.

▼삼성코닝 2년만에 이익 2배로▼

삼성코닝 수원공장은 최근 사소한 일로 약 6년간 노력 끝에 달성했던 무재해 인시(人時·근로자의 작업시간을 더한 것) 4000만 시간을 알리던 간판을 내렸다. 박 사장은 간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소한 일도 사고로 규정, 이를 내리게 했다. 사원들은 정직에 대해 이해하고 신뢰하는 계기가 됐다.

삼성코닝은 공장에 아직 이런 사례들이 남아 있으나 모두 사라지면 진정한 의미의 지식경영이 실천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사장은 “자율에 맡겨 고정관념을 깨는 일에 스스로 도전하도록 하면 두뇌를 많이 사용하게 된다”며 이것이 사람을 키우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삼성코닝은 혁신적인 발상으로 회사에 기여한 사원을 ‘지식스타’로 선정해 순금 거미배지를 준다. 2년간 64명이 선발됐다. 수원공장 입구에 서있는 ‘가치창조의 탑’은 이 회사가 만든 브라운관용 유리에 회사 발전을 위한 가치를 제공한 직원 150여명의 이름이 올라 있다.

삼성코닝은 지식경영 도입 2년 후 매출은 비슷하지만 이익은 2배, 부채비율은 3분의 1로 줄었다고 밝혔다.

▼대림 5000건 시공 노하우 축적▼

건설회사인 대림산업의 이용구 사장은 지식경영 예찬론자이다. 지식자산이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 사장은 기록을 잘 하지 않는 습관을 바꾸기 위해 메모수첩을 만들어 나눠주고 있다. 그 스스로도 매월 수첩 7개 정도를 사용한다.

사무실 곳곳에 ‘잠자는 지식을 깨우고, 흩어진 지식을 모으고, 낡은 지식을 바꾼다’는 슬로건이 붙어 있다.

이 회사의 지식 데이터베이스에는 지금 5000건 이상의 시공 관련 노하우가 들어 있다. 처음에는 직원이 지식을 내놓지 않아 현장에서 반복되지만 개선되지 않는 것을 문제점 위주로 발표하게 해 이를 정리했다. 결국 시공방법의 개선으로 이어졌다. 지식을 데이터베이스에 올리는 사원에게는 그 내용을 평가해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대림산업은 60여년간 축적한 설계 구매 토목 구조 교량 등 노하우와 고층빌딩인 아크로빌을 건설한 후 이를 관리 운영하는 노하우를 유료로 다른 기업에도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주제어로 ‘균열’을 넣으면 현상에 대한 원인, 문제 해결법, 예방책 등이 나타난다.

이 사장은 “건설업 특성상 장부관리하는 관행이 있으나 이를 회계와 일치시키는 투명경영을 선언하고 먼저 전자입찰 도입으로 입찰과정의 문제를 없앴다”며 “7월부터 수백 페이지인 시방서를 e메일로 보내주고 하도급자에게 은행에서 현금으로 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자율과 투명경영을 강조하는 이 사장은 실패해서 큰 손해를 본 것을 정보망 ‘코러스(Chorus)’에 올리도록 한다. 설계와 구매 시공 등이 잘못되면 회사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기 때문에 잘못을 ‘공개’하도록 한 것.

이 사장은 “실패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림산업은 정보시스템으로 경영성과와 공사현황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해외 공사현장은 위성으로 또 국내 주요 현장은 폐쇄회로TV로 연결되어 있다.

대림산업은 고객의 생활패턴 변화에 맞춰 해피콜제도를 도입했다. 하자 접수에서 보수 완료 후 입주자 확인까지 고객 애프터서비스를 실시간 모니터링한다. 최근 분양고객에게도 차별화된 서비스를 하기 위해 정보시스템 개발에도 착수했다.

<김상철기자>sckim007@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