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이동통신사 대리점 전산망과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고객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의 개인정보와 통화내역을 알아내 협박범죄에 사용한 사건을 적발했다.
이동통신사의 이 같은 허점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개인의 사생활이 침해되거나 이번 사건처럼 범죄에 사용될 가능성도 적지 않아 개선방안이 시급한 실정이다.
▽범행내용과 경찰조치〓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21일 모 이동통신사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헤어진 애인의 통화내역을 알아내 협박에 사용한 서모씨(27·회사원·경기 의정부시 신곡동)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또 서씨에게 고객(헤어진 서씨의 애인)의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알려준 이동통신사 대리점 직원 이모씨(27·서울 노원구 하계동) 등 2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특히 문제가 된 모 이동통신 사업자도 고객 개인정보 관리소홀 등 혐의(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애인이었던 권모씨(27)와 헤어진 서씨는 미리 알고 있던 권씨의 주민등록번호와 휴대전화 비밀번호로 권씨의 e메일 내용을 몰래 확인해 권씨가 다른 남성과 교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서씨는 이어 모 이동통신사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 권씨의 통화내역을 불법으로 빼낸 뒤 권씨에게 “과거의 이성관계를 폭로하겠다”며 협박한 혐의다.
서씨가 이 회사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빼낸 통화내역에는 권씨의 새 애인을 포함해 권씨가 통화한 상대방의 전화번호 통화시간 등이 기록돼 있다.
서씨는 또 지난달 중순경 권씨와 통화가 잦았던 한 남성을 권씨의 새 남자친구라고 추정, 이 남성의 휴대전화 번호를 이동통신사 대리점에서 일하는 친구 이모씨 등에게 건네 이들의 도움으로 이 남성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을 알아냈다. 서씨는 이 정보로 또다시 이 회사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 세차례에 걸쳐 통화내역을 확인한 혐의도 받고 있다.
▽드러난 문제점〓경찰조사 결과 이씨 등은 이동통신사에서 승인받은 ID와 비밀번호로 회사 전산망에 접속, 고객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의 개인정보를 빼낸 것으로 드러났다.
또 누구나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와 비밀번호만 알면 회사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다른 사람의 통화내역까지 알아낼 수 있는 데다 대리점 직원들의 경우 회사 전산망 관리자의 사전승인을 받지 않고도 고객의 정보를 빼낼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피의자 이씨는 자신이 일하는 대리점의 경우 “전산직 직원만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는 회사에서 승인받은 12개의 ID를 영업직 직원을 포함한 24명의 전 직원 대부분이 알고 있다”며 “조회자의 ID와 조회시간 등이 전산망 기록에 남지 않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기본적인 개인정보를 빼낼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이동통신사는 현재 전국 1300여개의 지점에 1100만여명의 가입자를 갖고 있으며 고객의 기본정보를 알 수 있는, 회사에서 승인한 ID의 수만도 700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이동통신사들의 개인정보 관리가 너무 허술해 범죄에 이용될 수 있다”며 “관리자의 사전승인 없이는 고객정보 조회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기득기자>rati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