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저지에서 살다 최근 귀국한 주부 이모씨(32)는 요즘 정신이 멍하다. 이씨는 조국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라 ‘정신차릴 수 없이 시끄러운 나라’임을 실감하고 있다.
지난해 환경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25개 주요 도시 중 23개 도시가 낮 소음기준치(55㏈)를 초과했고 24개 도시가 밤 소음기준치(40㏈)를 넘어섰다.
눈이나 코 건강에 신경쓰는 사람은 많지만 주변이 온통 소음에 싸여 있는데도 귀 건강에 신경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청력은 결정적으로 나빠지기 전에는 표시가 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신경써야 한다.
소음은 귀뿐만 아니라 소화기 뇌 순환기 등 신체 곳곳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면 좋은 소리는 몸과 마음의 활력소가 된다.
▽좋은 소리와 소음〓전설적 헤비 메탈 록 그룹 레드 제플린의 음악이나 서태지의 음악은 듣는 사람에 따라 좋은 소리가 될 수도, 소음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좋은 소리와 소음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지만 아무리 좋은 소리라도 90㏈ 이상 되는 소리를 일정 시간 이상 들으면 귀에 부담이 되며 오래 노출될 경우 듣기세포가 죽어 난청의 원인이 되고 비정상적 신경전류가 흘러 귀울림(이명)이 생기기도 한다. 또 일반적으로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등 자연의 소리는 사람에게 활력을 주지만 인위적 소리는 같은 세기라도 상당 부분 소음으로 작용한다. 90㏈ 이하의 소리라도 계속 오래되는 무의미한 소리는 인체에 별 해악이 없지만 불쑥불쑥 들리는 소리는 소음으로 작용한다.
또 같은 세기의 소리라도 주파수가 높을수록 사람에게 해로우며 20㎐ 이하의 초저주파 소음도 혈압 상승 등 인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초저주파 소음은 공장이나 비행장 부근에서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창문이 떨리는 경우나 가정의 오디오 시스템에서 서브우퍼 볼륨을 지나치게 크게 했을 때 해당된다.
▽좋은 소리는 보약〓동양에서는 예로부터 귀와 마음의 관계에 주목했다. ‘총명(聰明)’은‘귀가 밝고 눈도 밝다’는 뜻, 60세를 뜻하는 이순(耳順)은 ‘귀가 부드러워진다’는 뜻이다. 1998년 홍콩 중원(中文)대 심리학자들은 어릴 때 악기 연주법을 배운 성인은 일반인에 비해 단어기억력이 높다는 사실을 밝혀 ‘네이처’지에 발표했다. 이들은 그야말로 ‘귀 밝은 사람이 똑똑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던 것이다.
또 음악이 심신을 이완시키고 스트레스를 풀어줘 ‘마음을 부드럽게 해준다’는 연구보고는 수없이 많다. 미국에선 70여개 대학에 음악치료 전공 과정이 있으며 5000여명의 음악치료사가 우울증 자폐증 치매 등의 치료를 도와주고 있다. 수술 출산 화상치료 때 음악을 틀어주면 통증이 누그러진다는 보고도 숱하게 있으며 국내에서도 수많은 의사들이 수술실 출산실 등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있다.
▽귀를 보호하려면〓가능하면 시끄러운 곳을 피한다. 피치 못할 경우엔 1시간에 10분 정도는 조용한 곳에 가서 귀를 쉬게 한다. 시장통 등 시끄러운 곳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약국에서 귓구멍을 틀어막는 귀마개를 사서 끼는 것이 좋다. 군인이나 예비군은 포나 총을 쏠 때 반드시 귀마개를 해야 한다. 특정 약물은 난청을 일으키므로 약을 복용하는 중 갑자기 귀가 안들리면 당장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
청력이 어느 정도 떨어진 경증 환자는 감기에 걸렸을 때 비행기 여행을 삼가고 등산, 스킨스쿠버 등 주위 기압이 변화할 수 있는 취미생활을 피한다. 코를 지나치게 세게 풀거나 소리를 크게 지르는 것도 귀에 좋지 않다.
또 이들 환자는 무거운 물건을 드는 것도 피하고 술 담배 카페인음료를 멀리하는 것이 좋다. 피로가 쌓이면 청신경에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난청이 악화되므로 틈나는 대로 피로를 푼다. 당뇨병 고혈압 지질대사이상 등의 병은 듣기신경을 상하게 할 수 있으므로 원인질환을 제대로 치료 또는 관리해야 한다.
▼소리의 세기에 따른 영향
데시벨(㏈)은 소리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 그러나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종류가 있다.
병원에서 난청도를 정밀 검사할 때는 ㏈HL을 이용한다. 이는 청력이 정상인 20세 남녀가 주파수별로 들을 수 있는 가장 작은 소리를 0으로 정한, 주파수별 음의 세기.
반면 ㏈SPL은 주파수에 관계없이 소리의 압력을 절대 수치화한 것이다. 압력에 가중치를 두는 방법에 따라 A, B, C의 세 종류가 있으며 보통 소음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A(이하 ㏈로만 표기)이다.
사람에겐 6㏈ 높아질 때마다 소리가 2배씩 크게 들린다. 기준 ㏈보다 12㏈이 높으면 소리는 4배, 18㏈이 높으면 8배 크게 들리는 것.
일반적으로 40㏈을 넘으면 어떤 식으로든 인체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80∼90㏈이면 귀에 무리가 올 수 있다. 90㏈에서 8시간, 95㏈에서 4시간, 100㏈에서 2시간, 110㏈에서 30분 이상 있거나 115㏈ 이상의 소리에 순간적으로 노출되면 청신경이 한꺼번에 망가질 수 있다.
이성주 기자 stein3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