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스트리디움 보튤리늄이란 토양 세균이 분비하는 이 독소는 생물이 만드는 물질 중 독성이 가장 강하다. 단 1g으로 100만명 이상을 죽일 수 있다.
이 세균은 1895년 벨기에에서 식중독으로 죽은 사람을 부검하다가 처음 발견됐다. 일본군 731부대는 1930년대에 만주 감옥소에서 이 세균에 대한 생체실험을 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은 독일의 보톡스 살포에 대비해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100만개의 백신까지 준비했다.
이라크도 걸프전 직후 유엔의 사찰단에게 1만9000ℓ의 보톡스를 생산한 사실을 인정했다. 이는 전세계 인구를 3번 죽일 수 있는 양이다. 이라크는 미사일 13개에 보톡스를 장전했고, 탄저균을 넣은 것은 2개뿐이었다. 미국은 북한도 보톡스 생산국으로 보고 있다.
90년대에 일본 옴진리교도는 도쿄 시내와 주일 미군기지에 세 차례 이상 보톡스를 살포했다. 하지만 솜씨가 미숙해 피해를 주지 못했다. 이 사건 뒤 미국 국방부의 허가를 받아 보톡스를 수입하는 대웅제약에는 절대 팔아서는 안될 테러리스트의 명단이 두꺼운 책으로 함께 들어오고 있다.
보톡스는 몸 속의 신호전달물질을 차단해 근육을 마비 이완시킨다. 고농도의 보톡스는 무서운 무기지만, 아주 엷게 희석해 주사하면 젊음을 되살리는 ‘마법의 약’이 된다.
보톡스가 약으로 둔갑한 것은 미국의 안과의사가 미국 생화학무기연구소에서 만든 보톡스를 사팔뜨기 치료에 쓰면서부터였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1989년 보톡스를 사팔뜨기, 눈근육경련, 얼굴경련, 뇌성마비 치료 목적으로 승인했다. 그런데 캐나다의 한 피부과 의사가 안과의사인 아내가 보톡스로 치료한 환자의 눈가에 주름살이 없어진 것을 알고 주름살 제거에 임의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FDA는 긴 논란 끝에 이달 말 보톡스를 주름살 제거용으로 승인할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벌써 ‘2002년판 비아그라’가 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보톡스는 4∼6개월이 지나면 약효가 떨어져 부작용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반복 주사하는 데 따른 부작용, 쓸수록 주사량을 늘려야하는 내성 증가 문제에 대해서는 논란이 가시지 않은 상태다. 천사와 악마의 얼굴을 동시에 가진 보톡스에 대해 그 혜택과 위험을 냉정히 평가해 국내 승인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