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의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국제문제 전문 격월간지 포린폴리시 최신호(3,4월호) 기고문에서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생명공학기술(BT)이 제기하는 심각한 문제들은 국제적 수준에서 대처해야 한다”며 이같이 제안했다.
미대통령 직속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후쿠야마 교수는 최근 저서 ‘인간이후의 미래’에서 “BT 혁명으로 인류가 인간 이후(Posthuman) 단계의 역사로 옮아가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다음은 기고문 요지.
▽왜 국제 체제가 필요한가〓BT는 핵무기 기술처럼 파괴력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정보통신기술처럼 무조건 이롭지만도 않다. 이 기술은 심지어 인간 본성과 인류 존재에 대한 사고방식을 뒤바꿀 수도 있는 잠재력을 가진 기술이다.
이같은 문제점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세계 각국이 정치적 수단을 통해 BT의 이용과 발전을 규제하는 것뿐이다. BT 산업에는 너무나 많은 상업적 이익이 발생하는 관계로 자율적 규제가 작동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인간복제와 잡종생명체의 출현 등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개체복제 기술은 윤리적 이유 등에 따라 철저히 금지해야 한다. 하지만 치료목적의 배아복제 등 다른 BT에 대해서는 좀더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주요 국가별 복제기술 정책 방향 추진 방향 영국 -치료 및 연구목적의 배아복제 허용(2001.1)
-인간개체 복제는 금지(2001.12)미국 -인간개체 및 배아복제를 금지하는 ‘인간복제금지법안’ 하원 통과(2001.7)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연방연구비 지원 방침 발표(2001.8)일본 -배아복제 허용여부 등을 문부과학성 지침에 위임(2000.11)
-인간배아복제 금지하되 동물 난자 통한 복제는 허용(2001.12)독일 -배아 취급 및 복제를 금지(1990)
-배아줄기세포 수입을 제한적으로 허용(2002.1)프랑스 -배아 취급 및 복제 금지(1990)
-인간개체복제 및 배아복제 금지하는 정부안 확정(2001.6)
▽어떻게 만들까〓이같은 규제장치는 세계적 수준에서 마련되지 않고서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세계화와 정보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연구 인력과 기업 모두가 손쉽게 다른 나라로 이동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규제가 엄격한 독일의 복제기술 연구자들은 이런 연구에 관대한 영국으로 대거 옮겨갔다.
그러나 국제적 수준의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각 국가는 자국내 규정을 우선 마련해야 한다. 특히 이같은 국제 체제는 미국의 조치가 있을 때 쉽게 출범할 수 있다. 이미 지난해 11월 독일 인도 일본 아르헨티나 브라질 영국 등 24개국이 개체 복제를 금지키로 합의한 바 있다.
국제 체제의 구축은 반드시 새로운 국제조직 설립이나 유엔의 확대로 이어질 필요도 없다. 국제 체제는 각국이 규제 정책을 조화하려는 노력을 통해 자연스레 생겨날 수도 있다.
선대인기자 eodls@donga.com
▼전문가 의견▼
이재영(李在永) 과학기술부 생명환경기술과장은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의 주장에 대해 “배아복제는 전 세계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문제로 이를 규율할 국제체제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동의했다.
그러나 그는 “유엔 등 이를 규율할 수 있는 국제기구가 있는데 굳이 이를 피하는 것은 미국 주도의 국제체제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치료 목적의 배아복제 허용 여부 등에 대해 관련 부처 등과 계속 논의하고 있으나 아직 확정안은 나오지 않았다”며 “매우 민감한 문제인 만큼 학계와 시민단체, 관련 업계의 사회적 합의를 최대한 이끌어 내겠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치료목적의 배아복제 및 교잡성 배아복제는 매우 민감한 문제여서 쉽게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면서 “9월 정기국회 때까지는 정부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장은 영국은 생명공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잃어버린 대영제국의 영화를 되찾을 수 있다고 보고 배아복제기술 연구에 매우 적극적인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면서 이 같은 국제적 환경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