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교수의 강의 시간에는 늘 재미있는 이벤트가 있다. 속에 더 작은 모양이 계속 들어 있는 러시아 인형으로 원자, 원자핵, 양성자, 쿼크(소립자)로 이어지는 원자의 구조를 빗대고, 학생과 돈을 주고받으며 공유 결합을 설명한다. 이처럼 재미있는 명강의로 김 교수는 2년 전 서울대 자연대에서 교육상을 받았다.
최근 국내 이공계 대학에서 명강의 열기가 뜨겁다. 어렵고 재미없는 과학 교육이 과학도의 꿈을 꺾고 이공계 기피 현상을 심화시키면서, 이공계 교수들도 이제 명강의를 궁리하느라 열심이다. 98년 인하대, 99년 포항공대에 이어 지난해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숙명여대, 조선대 등에 교육개발센터가 잇따라 세워져 ‘이공계 명강의’기법을 연구하고 있다.
그동안 대학가에서는 교수의 연구 업적이 강조되면서 상대적으로 수업은 소홀히 다뤄졌다. 포항공대 강인석 교육개발센터장은 “미국 대학은 총장이나 노벨상 수상자들이 1학년 과학 과목을 열성적으로 가르치지만, 우리는 고등학교와 다를 바 없는 대학의 주입식 교육에 실망하는 대학생들이 많다”고 우려했다.
선진국 교수들이 강의에 쏟는 노력은 연구에 뒤지지 않는다. 한국의 강의평가서는 대부분 ‘수업이 좋았다 나빴다’ 정도의 간단한 설문지를 학생에게 주는데 그친다. 그러나 미국고등교육학회의 강의평가서는 ‘과거 연구 경험을 학생들과 공유했다, 학생들의 이름을 둘째 주까지 모두 외웠다’ 등 매우 구체적인 문항으로 구성돼 바로 강의에 이용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양자 수학’을 가르치는 수학과 교수가 물리학과에서 양자역학을 수강하고, 온갖 도구로 강의 시간에 ‘과학쇼’를 펼치고, 박사 과정부터 강의 훈련을 받는다. 서머스 하버드대 총장은 “못가르치는 교수는 쫓아내겠다”라고 교수들을 다그치기도 했다.
포항공대에서 지난해 ‘베스트 티처’로 선정된 강인석 교수(화공과)는 “10여년 전 첫 강의후 ‘의욕은 넘치지만 경험이 부족하다’는 학생들의 말에 받았던 충격이 지금은 약이 됐다”며 “각종 테크닉보다 학생들에 대한 정성이 더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공업수학을 가르치는 강 교수는 수학 개념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소설처럼 풀어내고, 강의 전날에는 수업 과정 전체를 영화처럼 머릿속으로 연상하며 부족한 부분을 점검한다. 강의 시간 내내 칠판에 직접 수식을 써가며 학생들과 호흡을 같이 한다.
열변을 토하는 명강의도 중요하지만 21세기의 학생들을 과학자로 키우려면 비디오·컴퓨터 수업, 원격 수업 등 다양한 방식의 수업도 절실하다.
포항공대 교육개발센터 이은실 박사는 “1학년을 대상으로 시험 비중은 15%로 줄인 대신 리포트를 여섯 개 쓰고 교수와 개별적으로 토론하는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강의 외에 프로젝트, 세미나, 현장 수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기자 dre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