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위암억제 유전자 기능 국내학자 세계 첫 규명

  • 입력 2002년 4월 4일 15시 41분


위암 억제 유전자 발견한 배석철 교수
위암 억제 유전자 발견한 배석철 교수
위암을 억제하는 유전자의 기능을 국내 과학자와 일본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규명해냈다.

충북대 의대 생화학연구실 배석철(裵錫哲·44·사진) 교수팀은 일본 교토대 바이러스 연구실 이토 요시아키(63) 교수팀과 함께 위암 발병을 억제하는 유전자인 ‘RUNX3’의 기능을 밝히는 데 성공했다고 5일 밝혔다.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 ‘셀(CELL)’은 5일자 커버스토리로 이 연구 내용을 담은 논문을 소개했다. 배 교수 등 연구팀은 95년 ‘RUNX3’를 발견한 뒤 그 기능을 확실히 규명하기 위한 연구를 계속해왔다.

특히 이 논문은 배 교수의 제자인 한국계 중국인 이청림(李淸林·33) 박사가 제 1저자로 되어 있어 한중일 3국 과학자의 공동연구가 낳은 귀중한 성과로 평가된다.

배 교수팀은 실험 쥐를 이용해 RUNX3 유전자를 제거하면 늙고 병든 세포가 죽지 않고 계속 분열해 위암이 생긴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또 인체 암 세포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위암 환자의 60% 정도는 RUNX3 유전자가 기능을 못해 암 세포 증식을 막지 못하는 것을 밝혀냈다.

정상세포가 늙고 병들면 일반적으로 TGF-β라는 DNA의 ‘자살 명령’을 받아들여 암으로 진전되는 것을 억제하지만 일부 세포는 이런 신호를 받아들이지 못해 증식을 거듭, 암 세포로 바뀌게 된다. 배 교수팀은 RUNX3가 없으면 세포가 ‘자살 명령’신호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과 함께 RUNX3를 복원해 치료할 수 있다는 이론적 근거도 마련했다.

배 교수는 앞으로 위암의 조기 진단법은 물론 RUNX3 유전자를 복원하는 기술을 통해 위암 치료제를 개발할 계획이다. 또 RUNX3 유전자가 폐암의 발병과도 40% 정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실험 결과 확인돼 폐암 치료제 개발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위암은 국내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암으로 연간 4만명, 세계적으로는 100만명의 환자가 발생한다.

한편 배 교수는 그동안 턱없이 모자라는 연구비 때문에 빚을 얻어 실험 기자재를 마련했으며 결국 집까지 팔아야 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연구비 조달을 위해 벤처회사 ‘바이오러넥스’를 세웠으며 8명의 투자자로부터 지원을 받아 연구를 마무리하고 특허 출원에 필요한 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배 교수는 이에 앞서 이번에 발표한 논문 내용을 근거로 3년 동안 정부에 충북대 의대 생화학교실을 ‘국가 연구소(National Lab)’로 지정해 줄 것을 요청해왔으나 번번이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에는 과학기술부의 ‘창의 과제 연구사업’에 지원했으나 서류 심사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거대 외국계 다국적 제약회사에서는 수천억원이 들어가는 암 치료제 개발을 공동으로 하자며 ‘물밑 접촉’을 해왔다고 그는 밝혔다.

“지방대 교수는 관심의 대상에서 늘 제외돼 왔습니다. 실력을 갖추고 ‘열정’이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죠. 또 미래에 대해 불확실해 하는 이공계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습니다.”

배 교수는 “다국적 제약사의 제안을 받았지만 ‘칼자루’를 쥔 이상 국내 연구진과 투자자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서 치료제 개발까지 끝마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청주〓차지완기자 marud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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