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물학자는 사회를 합리적 발명품이 아닌 인간의 본성이 빚어낸 조각품으로 본다. 적자생존과 자연도태를 체계화한 다윈부터 ‘이기적 유전자’의 리차드도킨스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자는 ‘이기적 경쟁’이 진화와 역사의 원동력이라고 강조해왔다. 반면 윌리엄 해밀턴 등 최근 등장한 좌파 다윈주의자는 ‘협동’도 인간의 중요한 본성으로 본다.
1964년 뉴욕에서 세계무역박람회가 열렸을 때 개미가 전시된 적이 있다. 당시 이 코너에는 “2000만년 동안 개미집단이 진화를 못한 것은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이다”는 자유무역주의자의 글귀가 붙어있었다.
실제로 30년 뒤 사회주의는 몰락했다.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지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사회주의자의 결정적 착오였다.
그러나 동물 사회에는 이기적 경쟁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도 많다. 가축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흡혈박쥐는 굶주린 동료에게 피를 나눠준다. 제인 구달은 탄자니아에서 고아가 된 아기 침팬지를 떠맡는 침팬지 집단을 세 번이나 보았다.
인간 사회 역시 분업, 배려, 보호 등 일상적인 협동 활동이 많다. 특히 인간의 협동은 사냥한 고기를 나눠주고, 나중에 배고플 때 얻어먹으며 진화했다. 베풀고 나중에 그 사람에게 도움을 받는 게 서로 이익이라는 ‘상호적 이타 심리’에 수백만 년 동안 적응된 것이다. 우리의 뇌가 무려 34년 동안 얼굴을 기억하는 것도 일종의 ‘은인 기억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베풀고 배신을 당하면 협력은 깨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생물학자 해밀턴과 정치학자 액설로드는 베푸는 자와 배반자를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컴퓨터 토너먼트 게임을 했다. 이 실험에서도 베푸는 것이 배반보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익이라는 게 증명됐다.
그러나 봐주기와 협동만 강조하면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은 제대로 발휘될 수 없다. 특히 비대한 정부가 규제와 시장 개입으로 자유 경쟁을 왜곡하는 상태에서는 진정한 ‘경쟁’이 있을 수 없다. 보수주의자 대처는 ‘작은 정부’를 외쳐 영국을 경쟁력 있는 국가로 재도약 시켰다.
우리는 늘 경쟁하면서 협력한다. 분명한 것은 개인이 경쟁과 협력 어느 것을 택하든 사회 전체로 볼 때 손해보다 이익이 커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사회가 발전한다. 보수는 현단계에서 왜 경쟁이 더 필요한지, 진보는 왜 협력이 더 중요한지를 유권자에게 분명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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