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진단]스팸메일 규제 고객의견 따라야

  • 입력 2002년 5월 20일 18시 10분


하임숙기자
하임숙기자
세계적 인터넷 경매기업인 이베이는 1999년 4월 엄청난 난관에 봉착했다.

한 고객이 경매물품으로 총기류를 내놓은 것을 보고 경영진은 총기류 매매를 금지했다. 그러자 이베이 사이트에는 항의의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고객들은 이베이 이용금지 운동이라도 벌일 태세였다.

이 회사는 그 이후 두 달에 한 번 고객을 회사로 불러모아 제안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한 번은 새로운 결제수단을 도입하려고 했을 때 이 모임의 의견을 받아들여 결제시스템을 ‘선택사항’으로 만들기도 했다.

얼마 전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이베이를 방문했을 때 경영진 중 한 명인 브라이언 버크는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총기류 매매를 금지한 것은 여전히 옳은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고객을 설득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소용이 없어요. 정책의 정당성은 고객의 동의와 병행되어야 합니다.”

기업활동에서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한 인터넷 업체의 정책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아직도 한국 기업에는 ‘밀어붙이기’식 마인드가 남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최대 가입자를 가진 한 인터넷 기업은 최근 1000통 이상 의 대량 스팸메일을 가입자들에게 발송하는 사업자에게 돈을 내게 하는 정책을 강행했다. 시행 계획이 발표되자마자 이 사이트에 반대하는 모임이 생겨나는 등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이 제도는 지난달부터 시행됐고 현재 어느 정도 안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논란의 과정에서 소비자는 어디로 갔을까. ‘스팸메일에 시달리는 소비자를 위하여’라고 회사에서는 내세웠지만 정작 정책 결정 과정에 소비자가 참여한 적은 없다.

기자도 사실 그 사이트의 e메일을 이용한다. 그러나 이 제도가 시행된 뒤 뭐가 바뀌었는지 별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기자에게는 불필요한 메일이 날아오며 가끔 그 가운데 정보를 얻기도 한다. 만일 이용자의 참여를 통해 정책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냈다면 그 정책은 훨씬 경제적으로 시행됐을 것 같다.

어느 정도 결론이 난 이 문제를 다시 꺼내는 것은 최근까지 이 회사와 이 정책을 반대했던 모임이 자신의 입장이 옳았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베이가 ‘총기류 문제’에서 ‘고객과의 만남’을 이끌어냈듯이 안 좋은 일에서도 무언가 배우는 자세가 아쉽다.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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