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건축은 88년 서울올림픽, 93년 대전엑스포 때 국내에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해 이번 월드컵에서 꽃을 피웠다.
스팬 100m 이하의 중소규모 막 건축은 이미 국내 자재와 기술로 건설되고 있다. 국내 최초의 막 구조 건축인 강촌휴게소을 비롯해 서울정도 600년 기념관, 천안 주택은행 체육관, 수원 청소년 야외음악당 등이 그것이다. 또 영종도신공항, 고속전철역사 등 막 건축 사례는 계속 늘고 있다.
막 구조 건축에서 기둥은 압축력만 받고, 막은 인장력만 받으므로 군더더기 없이 매우 효율적으로 구조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한편 가장 싸고, 빠르게, 가장 넓은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에어돔도 전시장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다만 에어돔은 계속 바람을 불어넣어야 형태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막 건축과 다르다.
이번에 완성한 10개의 월드컵 경기장은 대부분 스팬이 200m에 이른다. 일부 구조설계는 외국 기술진의 도움을 받았지만, 상당 부분 국내 건축가들이 설계한 것이다. 폴란드를 격파한 부산경기장은 막으로 공 (球)모양을 구현했고, 수원경기장은 ‘비상하는 날개’를, 서귀포경기장은 제주 특유의 ‘분화구’와 ‘오름’을 막으로 구현한 아름다운 작품이다.
특히 개막전이 열린 서울월드컵 경기장은 방패연과 황포돛배를 연상시키는 전통미와 막 구조로 눈길을 끌고 있다. 이 경기장의 지붕은 한강변에 마치 황포돛배처럼 16개의 마스트가 우뚝 솟아 있다. 마치 대나무 살이 방패연의 창호지를 팽팽하게 당기듯 마스트가 지붕막과 트러스를 잡아당기고 있어 서울의 새로운 볼거리가 되고 있다.
막 건축은 기둥이 없는 거대한 공간을 만드는 외에 빛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낮에는 햇빛이 실내를 밝게 하고 밤이 되면 내부의 빛이 바깥으로 투과된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설계한 류춘수씨(이공건축 회장)는 “지붕이 창호지와 같이 햇빛을 받아들이고, 밤에는 실내의 불빛이 새어나가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고 말했다. 류씨는 1998년 서울에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잡지의 방패연을 보고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라 그 날 밤 파리의 한 호텔에서 단숨에 서울경기장을 스케치했다.
그는 80년대 중반 올림픽 체조경기장에 케이블 돔 방식으로 국내 최초의 대규모 막 구조 건축물을 탄생시킨 막 건축의 개척자다. 그는 막 건축을 다양한 공간에 도입하기 위한 시도를 해왔다.
국내 최초로 국산 막 건축 자재를 활용해 한강변의 경치가 뛰어나기로 이름난 강원도 강촌에 휴게소를 설계했다. 이 건물은 벽이 없이 기둥과 지붕만 있어 우리나라 전통 정자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24평 짜리 아파트에서 세 들어 살던 그는 월드컵 경기장 설계로 돈을 벌어 얼마 전 자신의 집을 지었는데 이것도 막 건축이다. 옥상 위의 멋진 천막 아래 그늘은 이 집에서 가장 좋은 쉼터이다. 설악산 자락의 ‘한계령 휴게소’도 그의 손때가 묻은 작품이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