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포항 초등학생들 "나도 과학자"

  • 입력 2002년 7월 7일 17시 19분


포항제철동초등학교 과학반 학생들이 생태변화 조사를 벌인 산불이 난 지역. 사진은 산불에 타 검게 변한 지표층(왼쪽)과 산불로 타버린 땅 위로 새싹이 돋아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포항제철동초등학교]
포항제철동초등학교 과학반 학생들이 생태변화 조사를 벌인 산불이 난 지역. 사진은 산불에 타 검게 변한 지표층(왼쪽)과 산불로 타버린 땅 위로 새싹이 돋아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포항제철동초등학교]
지난해 8월 경북 포항시 근처의 한 야산.

산길을 헤쳐 중턱까지 올라온 어린이들은 산불의 흔적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나뭇가지는 손만 대면 부스러졌고, 흙은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불에 타버린 까마귀나 작은 동물들을 볼 때면 절로 눈이 감겼다. 잠시 후 학생들은 고사리 손으로 불에 탄 흙더미를 헤집기 시작했다. 서너 시간의 조사가 끝나서야 학생들은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제1회 사이버과학연구센터(CRC)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포항제철동초등학교 과학반 학생 7명(6학년)은 한결같이 “산불 지역의 생태계 피해가 너무 끔찍했다”며 “이곳의 산불이 사람들의 실수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앞으로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 대회는 한국과학문화재단(이사장 최영환)이 처음으로 초중고 학생들에게 수백만 원의 연구비를 지원한 ‘학생과학자 프로그램’으로, 포항 학생들은 ‘산불 지역의 생태 변화’를 조사해 초등 부문 대상을 받았다.

과학반 학생들이 산불지역에서 불에 탄 흙을 채취하고 있다. [사진제공 포항제철동초등학교]
학생들은 지난해 포항 주변의 식물원에 놀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산불로 검게 타버린 산을 보고 연구를 시작했다. 식물원에서 흥미롭게 본 푸른 나무들이 산불 지역에서는 어떻게 변했을까 호기심이 일었다.

학생들은 여름방학을 틈타 김태훈 과학반 교사와 함께 산불이 난 4곳의 산에 올랐다. 길이 없어 어떤 곳은 50여분 넘게 산길을 헤쳐 올라갔다. 학생들은 불에 탄 흙을 체통에 넣어 크기별로 골라내고 나뭇잎의 잎맥과 모양을 조사해 종류를 알아보는 등 서너 시간 동안 교실크기 만한 지역의 생태가 산불로 어떻게 변했는지 조사했다. 햇빛에 피부가 탔지만 관찰하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검은 흙 위에 돋아난 푸른 새싹을 발견하면 탄성을 질렀다.

김영준 군은 “땅 위가 식물의 재로 뒤덮여 있거나 흙이 유실된 곳이 많았다”며 “검게 탄 곳을 5㎝ 깊이로 파 봐도 지렁이나 벌레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고 산불 지역의 황폐함을 설명했다. 김환중 군도 “같이 산불이 난 곳도 덩굴식물이 새로 자라난 곳은 흙이 부드럽고 벌레도 많이 살았지만 식물이 없는 곳은 자갈로 뒤덮여 있었다”며 “이를 통해 식물이 토양의 유실을 막고 산불이 난 곳을 되살린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산에서 관찰이 끝나면 학교에 모여 토의를 했다. 서로 관찰한 점을 비교하다 보면 자신이 무엇을 소홀히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궁금한 점을 서로 묻다 보니 다음에 조사할 것들이 소록소록 떠올랐다. 한설 양은 “어른들이 산불 지역에 소나무를 심어 놨지만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답답했다”며 “나라면 알록달록 예쁜 꽃을 심고 싶었다”고 희망했다.

학생들이 ‘과학’을 보는 시각도 많이 달라졌다. 김태훈 교사는 “학생들이 직접 실험하고 관찰하면서 흔히 말하는 ‘이공계 기피 현상’과 달리 과학을 매우 좋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성민 군도 “예전에는 과학이 지루했는데 과학반 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돼 과학이 재미있어졌다”며 “지금은 스스로 식물을 키워보곤 한다”고 밝혔다.

이번 대회에서는 천안입장중학교 과학반 학생들이 ‘가스 밸브를 닫지 않으면 현관문을 잠글 수 없는 잠금장치’를 개발해 중등 부문 대상을, 대구과학고 과학반이 ‘부패 환경에서 음식물 쓰레기의 염분 감량 조건에 관한 연구’로 고등 부문 대상을 받았다. 천안입장중의 잠금 장치는 이달중 열리는 중국 청소년과학발명품대회에도 참가한다. 과학문화재단은 올해도 학생들이 신청한 100개 과제에 2억원을 지원한다.

포항〓김상연 동아사이언스기자 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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