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외환위기의 후유증에서 비교적 빨리 벗어날 수 있었던 데도 통신 등 IT산업의 역할이 컸다.
98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간 국내 IT산업의 연평균 성장률은 16.4%로 평균 경제성장률 4%를 훨씬 웃돌았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7년 7.6%에서 작년 13%로 높아졌으며 2006년에는 25%를 넘어설 전망이다. 휴대전화와 초고속인터넷 등 통신산업은 경제 전반의 ‘유발효과’도 높다.
최근 SK텔레콤과 KTF와의 ‘광고 전쟁’ 등 심심찮게 벌어지는 통신업계의 ‘진흙탕 싸움’은 달리 보면 그만큼 성장산업이기 때문이다. 신규수요 창출에 점차 어려움도 겪지만 이동통신업계는 올해도 사상최대의 흑자를 올릴 전망이다.
시장경제체제에서 기업간 경쟁 그 자체를 백안시할 필요는 없다. 잘만 하면 소비자들의 혜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통신시장에서 자주 나타나는 이전투구(泥田鬪狗)식 상호비방은 한계를 넘어섰다. 아무리 경쟁관계지만 최소한의 품위와 예의도, 공존의식과 금도(襟度)도 찾기 어렵다.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감정싸움만 두드러진다.
통신산업의 비약적 발전에 기여한 관련업계의 노력은 인정한다. 그러나 경영의 수익성을 보장해 준 높은 통신요금 책정 등 소비자들의 ‘희생’이 따랐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요금인하 등에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소극적인 통신업계가 ‘도토리 키재기’식의 비방과 선전에만 열을 올리는 모습은 보기 민망하다. 그런 정열을 기술 및 마케팅경쟁에 쏟아 소비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글로벌 경쟁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정보통신부의 정책도 난맥상을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통신시장은 특성상 다른 산업보다 ‘규제와 중재(仲裁)’의 필요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관료들이 이를 악용해 관련업계에 ‘상전 행세’를 하거나, 풀어야 할 규제도 움켜쥐려는 행태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 경제계에서는 해당산업에 대한 입김과 구조적 비리 가능성이 가장 큰 정부부처가 정통부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장·차관은 물론 국·과장이 바뀔 때마다, 또 같은 장관이라도 때와 장소에 따라 정책이 흔들리면서 혼선을 불러오기도 했다. 중심과 원칙이 없는 행정은 필연적으로 폐해를 초래한다.
통신산업은 앞으로 한국경제를 이끌어갈 핵심 축의 하나다.
이를 한 단계 발전시키려면 통신업계와 정부당국이 모두 타성에서 벗어나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가야 할 큰 방향은 소비자효용 극대화와 공정한 룰의 확립이다. 정보통신행정의 새 수장(首長)인 이상철(李相哲) 정통부 장관이 우선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과제도 여기에 있다.
권순활 경제부 차장 shkwon@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