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대머리 유전' 외가를 살펴라

  • 입력 2002년 7월 14일 17시 48분



‘대머리는 엄마 탓(?).’

어머니가 대머리인 경우 자식이 대머리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으며 부모 다음으로 영향이 큰 할아버지의 경우 외할아버지가 대머리일 때 탈모가 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일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국제피부과학회에서는 가족력과 탈모와의 관계를 새롭게 밝힌 ‘데이턴 연구’가 발표됐다.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 시의 라이트 주립대학 카메론 첨리 박사는 다국적 제약회사인 MSD의 후원으로 데이턴 시에 사는 18∼49세 남성 254명을 대상으로 2년간 그들의 탈모증상과 탈모 가족력에 대해 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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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탈모 정도에 대한 측정은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표준 탈모 척도인 ‘노우드-해밀턴 남성형 탈모 분류 시스템’에 따랐다.

그림에서 Ⅰ,Ⅱ단계는 무탈모, 나머지는 탈모에 속한다. 이 기준에 따를 때 조사 대상자의 55%가 탈모였다.

▽탈모의 가능성〓조사 결과 아버지가 대머리인 경우 아들이 대머리가 될 가능성은 대머리 가족이 없는 사람에 비해 2.1배가 높았다. 반면 드물지만 어머니가 대머리면 아들이 대머리가 될 가능성은 7.5배나 됐다. 또 외할아버지, 친할아버지가 대머리일 때는 각각 1.7배와 1.5배로 외할아버지의 영향이 더 컸다.

독일 필립 대학 피부과의 루돌프 해플 교수는 대머리의 위험성이 △‘양쪽 부모가 모두 탈모일 때가 가장 높고 다음은 △부모 중 1명과 조부모 중 1명이 탈모 △부모 중 1명이 탈모△조부모 중 1명이 탈모인 순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어머니가 대머리인 경우는 흔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대머리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경우는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대머리인 남성이었다.

그래프에 나타난대로 만약 20세의 남성이 그 아버지나 외할아버지가 대머리가 아닐 때 탈모가 발생할 확률은 10%이지만 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대머리이면 가능성이 35%가 된다.

▽탈모에 대한 인식〓파리 세인트루이스 병원의 콜린 조안니크 박사가 실시한 ‘남성형 탈모의 인식’에 대한 전세계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460명의 90%는 탈모가 유전이라고 답했지만 어머니쪽의 유전적 요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또 탈모의 원인이 스트레스라는 응답이 80%였고 △음식 60% △환경 45% △모발제품 36% △지성모발 32% △모자착용 26%의 순이었다.

조안니크 박사는 “이런 것들이 탈모와 연관이 있긴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 영향이 적다”며 “잘못된 믿음이 조기치료에 방해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탈모의 치료약〓탈모는 피부질환의 하나로 피부과에서 진료를 받아야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공인을 받은 탈모 치료제는 바르는 약인 미녹시딜과 먹는 약인 MSD의 프로페시아 뿐.

올해 발표된 5년 간의 임상시험 결과에 따르면 프로페시아를 복용한 남성 중 90%는 탈모가 정지됐고 65%는 모발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부작용으로 성욕감퇴가 1∼2% 보고됐으나 가짜 약을 먹은 사람에서도 비슷한 비율의 성욕감퇴자가 있었으며 정자의 수나 운동능력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는게 MSD측의 설명. 원칙적으로 여성에게는 처방하지 않으며 특히 임신한 여성은 기형아 출산의 위험이 있으므로 복용을 금한다.파리〓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

◆국제피부과학회 참가 김홍석씨 부자

오른쪽 끝이 한국인 참가자인 김홍석 김광식씨.

“중학생이 된 아들 녀석이 하루는 심각한 표정으로 ‘아버지도 대머리고 할아버지도 대머리니 저도 대머리가 되겠죠?’하고 묻더군요. 부모로서 정말 당황스러웠죠.”

이번 피부과학회에 참가해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탈모 부자(父子)와 치료 경험을 공유하고 돌아온 한국인 참가자 김홍석씨(58)는 아들 광식씨(26)가 중학교 때 질문하면서 짓던 그 표정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네가 어른이 되면 좋은 약이 나올 게다”며 아들을 달랬지만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 김씨 역시 중국에서 나왔다는 발모제를 바르는 등 소문을 듣고 안해본 것이 없었지만 헛수고였다.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그냥 체념하고 가발을 써 왔다.

아들 김씨의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한 것은 군에 입대한 23세부터. 휴가 나올 때 집안에서도 모자를 벗지 않았다.

“정말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그는 부모를 원망하기도 했다. 사회에 나오면서 걱정은 더 커졌다. 사람을 만나는게 두려웠다. 다행히 취직을 했지만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홍보업무라 부담이 더했다. 자신을 신입사원이라 소개하면 모두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곤 했다.

광식씨는 이번 학회에 참가해 ‘탈모의 심리적인 영향’에 대해 발표한 프랑스의 심리학자 자닌 드빌라스 박사의 말을 듣고 무릎을 쳤다. 박사는 “역사적으로 모발은 젊음과 진취성,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탈모가 주는 심리적 영향은 상당하다”고 말했다. 특히 동양권에서 탈모에 대해 더 예민하다는 것이 박사의 설명.

광식씨는 고민 끝에 올해 1월부터 피부과 모발 전문의를 찾아 치료를 시작했다. 치료 결과가 좋아 지금은 거의 탈모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회복됐다. 광식씨는 자기 전에 누워서 머리를 만지는 게 습관이 됐다. 손 끝에 까실까실한 감촉이 느껴지면 혼자 빙그레 웃는다.

“앞으로 더 좋은 치료법이 나와 내 아들은 이런 걱정을 안했으면 좋겠어요.”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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