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은 케이먼씨가 오랜 기간 방사성 연구에 몰두한 관계로 경미한 백혈병 증세를 보이면서 질병 저항력이 떨어졌다고 전했다.
케이먼씨는 캘리포니아주립 버클리대에 재직 중이던 1940년 동료 화학자 새뮤얼 루빈과 함께 C-14를 발견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5700년의 반감기를 가진 이 방사성 동위원소는 모든 생명체의 근원인 탄소가 들어가는 주요 생화학 실험에서 물질의 행방 및 변화를 추적하는 데 쓰는 추적자(子) 역할을 한다. 또 인류학, 고고학, 지질학적 발견과 관련해 유기 물질의 연대를 추적하는 데도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케이먼씨는 좌파적 성향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중 정부 요원들의 감시를 받았고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지도 못했다. 오히려 C-14 발견 4년 뒤 보안상 위험한 인물로 지목돼 버클리대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다. 그 뒤 1961년캘리포니아주립 샌디에이고대 화학과 설립에 기여한 그는 남캘리포니아대에서 교수로 자리잡으면서 안정을 되찾았고 80년대까지 대학 강단을 지켰다.로스앤젤레스AP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