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리서치 회사인 N사에 다니는 김모 과장(34)은 이런 생각에 오늘도 ‘사표’를 꿈꾼다. 다른 기업의 시장조사를 대신해 주는 회사라는 특성상 고객에게 쩔쩔 매야 하는 건 참을 수 있다.
그런데 직장 상사는 일은 자신에게 떠넘기면서 거기에 대한 작은 결정권도 주지 않는다.
“내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 같습니다. 죽도록 일하지만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어요.”
직장인이라면 한 두 번은 자신의 인생이 직장 상사에게 달려있다거나 자신은 직장에서 전혀 힘이 없다는 무력감에 시달린 적이 있을 것이다. 미국 ABC 방송은 최근 ‘그런 생각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무기력하면 일찍 죽는다〓미국 텍사스대 행동과학연구소의 벤저민 아믹 박사는 “다른 사람의 명령에 따라야 하고 정해진 시간표대로 움직여야만 하는 사람은 높은 위치에서 명령을 내리며 사는 사람보다 5∼10년 빨리 사망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슈레이어 연구소의 연구진은 ‘누가 실제로 상황을 통제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통제한다고 생각하는가’가 문제라는 연구결과를 ‘정신생리학’ 최근호에 발표했다. 실제로 자신은 무기력하더라도 ‘내가 이 상황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병이나 심혈관계통의 문제들을 줄일 수 있다는 것.
연구진은 사람들에게 비디오 게임을 하게 하고 헤드폰을 통해 짜증나는 소음을 들려줬다. 그들 중 반에게는 그들이 소음을 통제할 수 있으며 게임 성적이 좋을수록 소음이 줄어들 것이라고 얘기했다. 나머지 반에게는 소음은 임의로 나오는 것이며 통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참가자들의 심장박동과 혈압을 측정했다.
그 결과 자신이 소음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심장과 순환기 계통에 스트레스를 훨씬 덜 받았다. 수석 연구자인 수전 베스타인은 “이것은 스트레스 상황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인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줄어든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설명했다.
▽‘내가 왕이다’또는 ‘이게 나야’〓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택중 신경정신과 원장은 “일에 대해서는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지만 일을 끌고 가는 사람은 일에 매달려 가는 사람에 비해 스트레스가 적다”고 말했다. 각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사원보다 더 정력적으로 열심히 일하면서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은 이런 이치.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억지로 생각하는 게 힘들다면 상사의 일방적인 명령이라고 생각지 말고 ‘나의 일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래도 불만이 생긴다면 상사에게 터놓고 얘기하는게 좋다.
반면 서울 관악구 신림동 가람신경정신과 김경식 원장은 “오히려 상황을 그대로 인정하는게 동양인의 특성에 맞는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직장인의 무기력감 아래에는 ‘내가 꼭 남보다 나아야 하며 주도적인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는 것. 김 원장은 “힘이 있든 없든 그게 바로 나 자신”이라며 “명상과 참선, 요가를 하면 이런 마음을 갖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
▼스트레스 어떻게 푸나▼
누구나 스트레스가 많다고 하소연하지만 스트레스를 막는 ‘왕도’는 없다. 자신만의 해결책이 있을 뿐.
스트레스는 개인의 성격과 관련이 깊다. 환경탓, 남의 탓을 잘 하는 사람이 스트레스에 더 약하다. 간혹 안좋은 일이 있어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은 스트레스 관리능력이 뛰어나다. 다음에 같은 일이 생긴다면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그러나 이런 사람이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모든 문제를 자신에게서 찾아 더 무력해질 수도 있다. 어느쪽이든 극단적이면 안된다.
내적으로는 영양상태가 좋아야 한다. 특히 비타민 섭취가 권장되며 커피를 많이 마시는 것은 피한다.
대인관계에서는 적절하게 자기주장을 해야 한다. 항상 또렷하고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 자신과 타인에게 신뢰감을 준다. 직장상사에게 때론 ‘아니오’라고 말할 줄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잘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잘 들어야’ 한다. ‘그러나’ 보다는 ‘그리고’ ‘또’를 사용해서 말하는 버릇을 들인다.
스트레스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줄이는 방법으로 최면의 일종인 자율훈련과 점진적 이완훈련을 할 수 있다.
자율훈련은 일종의 이완법인데 △팔다리가 무거워진다 △팔다리가 따뜻해진다 △심장부위가 무겁고 따뜻해진다 △복부가 따뜻해진다 △앞머리가 차가워진다 의 순으로 상상하며 규칙적으로 호흡하는 것이다. 또 점진적 이완훈련은 몸의 특정 근육에 힘을 넣고 풀기를 4, 5분씩 하루에 수회 반복해 긴장을 조절하는 방법이다.
(도움말〓이택중 신경정신과 원장)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