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의학]우울증, 스트레스가 최대의 적

  • 입력 2002년 10월 6일 17시 14분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사는 최모씨(21·여·대학생)는 2개월 전부터 밤에 거의 잠을 자지 않는다.

낮엔 평소와 다르게 진한 화장을 하고 신용카드로 수백만원어치의 고급 핸드백과 옷을 사는 등의 이상한 행동을 하다가 가족에 이끌려 정신과 병원을 찾았다.

담당 의사는 “최씨처럼 마음이 들뜬 상태인 조증은 흔히 잠을 자지 않고 비싼 물건을 함부로 구입하거나 자기가 마치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는 과대망상 증상을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김모씨(43·여·주부)는 특별히 몸에 이상이 없는데도 2개월 전부터 기운이 없고 가슴이 답답하고, 만사가 귀찮아 이렇게 살아서 뭘 하느냐며 문득 자살을 생각했다.

김씨는 온 종일 집안에만 있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다 가족을 따라 정신과를 찾았으며 우울증으로 진단 받아 치료 중이다.

담당 의사는 “계절이 바뀌는 가을엔 특별한 질병이 없는데도 몸이 계속 아프거나 심각한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세상에 나 혼자밖에 없다고 느끼는 김씨와 같은 사람이 다른 계절에 비해 많다”고 말했다.

▽기분변화를 일으키는 원인〓기분변화는 누구나 느낄 수 있다. 대부분 몇 시간에서 며칠 정도로 짧게 지속되며 이로 인한 자신의 직업, 학업, 가정생활, 일상생활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반면에 우울증과 조증은 증상이 각각 2주 이상, 1주 이상으로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이로 인해 직업, 학업 또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게 되는데, 이때 치료의 대상이 된다.

우울증과 조증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과 도파민의 불균형으로 생긴다. 특히 봄이나 가을엔 일사량의 변화로 인해 세로토닌이 줄거나 늘어나면서 우울증이나 조증이 잘 생긴다.

이외에 심한 스트레스나 부모나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중풍 당뇨 등의 내과적 질환, 지나치게 도덕적이거나 이타주의 성격, 유전적인 소인도 원인으로 작용한다.

▽기분장애의 증상〓우울증은 지속적으로 우울하며 흥미가 감소하고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또 하루 종일 피로하며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또 지속적인 불안 걱정 긴장 초조함이 나타나기도 한다.

반면에 조증은 의기양양한 흥분상태가 지속되고 매사에 속도가 빨라진다. 춤추거나 노래 부르는 등의 소란스러운 행동을 한다.

사고 과정의 비약이 많아 부와 권력에 대한 과대 망상, 또는 무례함 폭력, 또 이와 관련된 피해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한편 기분장애와 증세가 비슷한 경우로 경계선 인격장애가 있다. 경계선 인격장애는 어려서부터 현재까지 증상이 진행 중인 경우가 많은 반면 기분장애는 시간 간격을 두고 간헐적으로 발병한다.

또 경계선 인격장애는 남이나 자신에 대한 평가나 기분 등이 급격히 변화해 자신을 과소 평가하거나 과대 평가하는 극단적인 양상을 보인다.

▽기분장애의 예방과 치료〓기분장애도 약물 치료가 중요하다. 기분장애는 대부분은 쉽게 고쳐진다. 하지만 일부는 폐 심장질환 알코올 중독에 잘 걸리며 입원환자 중 15%가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

모든 질병과 마찬가지로 기분장애도 충분한 휴식과 영양공급 만큼 훌륭한 예방책은 없다. 가족도 환자를 환자로 대하지 말고 가족의 일원으로 대하며 늘 환자 상태를 주의 깊게 살핀다.

증상이 심한 조증 환자와 우울증 환자 중에서 직장을 다니기 힘들거나 자살 위험이 있을 때는 입원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병원에선 약물치료 외에 정신치료 인지치료 광선치료 전기치료 등 환자에게 맞는 치료를 병행한다.

(도움말〓신촌세브란스병원 정신과 민성길 교수, 여의도 성모병원 신경정신과 박원형 교수, 마음누리 신경정신과 정찬호 원장)

이진한기자·의사 likeday@donga.com

▼“조울증 방치땐 정신분열병 발전”▼

“입시, 취업, 진급 경쟁이 치열한 한국과 같은 사회에서는 이에 따른 스트레스로 우울증과 조증이 반복되는 조울증(양극성 장애) 환자가 증가합니다.”

대한신경정신약물학회 초청으로 내한한 영국 뉴캐슬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앨런 영 교수(42·사진)는 최근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조울증 강연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영 교수는 “조울증의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환자의 3분의 2 이상이 가까운 친척 중 우울증이나 조울증 등 유사 질환을 앓고 있어 유전적 요인이 크다”며 “여기에 더해 스트레스 호르몬이 조울증을 일으키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조울증 환자는 전체 정신병동 입원 환자의 10% 정도. 조울증을 방치하면 정신분열병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영 교수는 “조울증 환자 중에는 이혼자나 독신자가 많고 성공한 사업가와 같은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은 사람도 많다”며 “자살률이 10%로 높기 때문에 증세가 있을 때 빨리 병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로 조울증 환자 대부분은 스스로 병원을 찾지 않고 가족들에게 끌려오는 특징이 있다.

얼마 전 생선기름이 우울증이나 조울증 증상을 완화시킨다는 외신이 보도된 적이 있는데 아직 임상시험으로는 입증되지 않았다고 영 교수는 말했다.

최근 치료 경향에 대해 그는 “지금까지는 기분안정제인 리튬과 간질치료제인 발프로레이트와 카바마제핀 등 복합요법이 사용됐지만 최근엔 정신분열병 치료제인 올란자핀(상품명 자이프렉사)이 단독 치료제로, 리스페리돈(상품명 리스페달)은 보조 치료제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영 교수는 “유럽에선 정신환자를 배려해 요양원이나 전문병원이 주로 시내 중심가에 있는 데 비해 한국은 대부분 외딴 지역에 있다”며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정신병은 위험하며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치료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관념이 강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진한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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