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전남 순천의 송광사에서 입산한 뒤 줄곧 이곳에서 정진 중인 영진(靈眞) 스님은 태교의 ‘모태(母胎)’는 불교라고 강조했다.
그는 불교식 태교 사이트(www.jabi0408.com)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 달 중순 임신부를 위한 태교 책 ‘착한이여, 내게로 오렴’을 펴낸다.
스님은 특히 국내 모유 수유율이 여전히 낮고 제왕절개 비율이 높은 것을 비판하면서 임신 전부터 태교에 신경 쓰고 자연출산, 모유 수유로 이어져야 성공한 태교라고 강조했다.
▽태교의 시작〓인삼을 재배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인삼 재배농가는 발아율이 20%인 인삼을 얻기 위해 3년간 밭을 휴식시키며 토양을 철저히 관리한다. 토양을 보호하고 자양분을 비축하기 위해서다.
마찬가지로 태교를 위해서 △임신 전 모체의 건강이 유지돼야 하고 △부부가 서로 애정을 주고받아야 하며 △태(胎) 중에 들어올 주인공이 있어야 한다.
이때 ‘주인공’은 정자나 수정란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어머니가 태아를 잉태하기 전에 꾸게 되는 태몽(胎夢)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태몽을 태아의 영혼이 깃들이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임신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늘 바르게 생각하면 좋은 태몽을 꿀 수 있다.
▽바른 몸가짐〓어떤 임신부는 태교를 한다면서 웃옷을 올려 불룩한 배를 드러내고서 태교 음악을 들려주기도 한다.
그러나 임신부는 무엇보다 몸가짐을 바로 가져야 한다. 불교에서는 스님과 신도들에게 평소 여덟 가지 생활원칙인 ‘팔정도(八正道)’를 실천할 것을 요구하는데 태교에 있어서도 팔정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팔정도 중에서도 △정견(올바르게 보는 것) △정사(올바로 생각하는 것) △정어(바르게 말하는 것) △정업(올바로 행동하는 것)의 네 가지가 특히 중요하다.
영진 스님은 “임신부는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순수하게 생각하고 천천히 반듯하게 걷고 옷 신발 등 주위 정리 정돈을 잘 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님은 또 “이처럼 작은 것에서 자기를 잘 관리하면 태아에게 그대로 영향을 줘 집중력이 강한 아이,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아이, 스스로 일을 추진해 의욕적으로 일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임신부가 태어날 아이의 집중력을 높이는 방법으로는 독서와 서예가 추천된다. 독서는 전문성 있는 책을 도중에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읽는다. 서예의 경우 단문 하나라도 열 번, 스무 번 계속 반복해서 쓰는 훈련으로 정성과 인내심을 기른다.
▽태교 주의사항〓임신 중엔 고민 걱정거리를 되도록 줄인다. 그렇지 않으면 태아를 산만하게 만들고 정서를 어지럽힌다. 특히 직장에 다니는 임신부는 틈틈이 쉬면서 스트레스를 풀도록 한다. 현대 의학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이 태아에게 전달돼 태아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막으려는 것과 같은 이치.
영진 스님은 “임신부가 상가(喪家)를 찾아가거나 많이 우는 것도 피해야 한다”며 “임신 중 많이 울었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얼굴이 밝지 않다”고 말했다. 불안, 초조함과 자기학대 등의 감정이 그대로 태아에게 전달되기 때문.
보통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가 몸이 가장 왕성할 때이므로 이때 하루 먹는 칼로리의 60%를 섭취하는 것이 좋다. 밤에 많이 먹는 것은 임신부와 태아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하므로 오후 8시 이후엔 먹는 것을 되도록 피한다.
이진한기자·의사 likeday@donga.com
▼영진 스님의 바른 태교 8계명▼
①늦어도 오전 7시엔 일어나는 엄마가 돼라.
②당당하고 반듯한 걸음을 걷고 평소 신발을 챙기고 정리하라.
③기초생활 질서가 분명해야 한다. 즉 일상적인 청소나 정리정돈을 할때 구석구석 알뜰하게 다듬는 생활습관이 중요하다.
④양보다는 질에 치중하라. 무조건 많이 크게 하는 팔방미인형이 아니라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하라.
⑤대화를 할 때는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주시하라. 건성건성 대답하는 평소의 말버릇을 고쳐라.
⑥정보의 홍수에서 벗어나라. 하루 한번쯤 뉴스를 시청하는 것 외에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게임에 매달리면 안 된다.
⑦소비를 줄이고 에너지를 절약하라. 식품이나 화장지 같은 생활용품 구입 이외에는 웬만하면 소비를 자제하고 마음으로부터 검소함과 평안함을 익혀라.
⑧술이나 담배를 멀리하라.
▼예나 지금이나… ‘공공의 적’ 스트레스 피해야▼
옛부터 내려오는 각종 전통적인 태교법은 어머니와 태아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는 점에 있어 현대적 태교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양대 의대 산부인과 박문일 교수는 “태교는 엄마가 원하는 아기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며 천재나 판 검사로 만들어야지 하는 등 어떤 목적을 갖고 태교를 하면 이것이 스트레스가 돼 태아에게 해롭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 교수가 소개하는 현대판 태교법.
①소음과 현란한 불빛을 피하라〓태아는 임신 5∼6개월부터 보고 들을 수 있다. 트럭 소리 크기인 90dB 이상의 소음이 있으면 태아는 체중도 줄고 양수도 준다. 따라서 임신중독증이나 유산 위험이 커지며 태아가 잘 자라지 않는다.
②아버지의 음성을 자주 들려줘라〓남성의 저음은 여성의 음성보다 자궁벽을 잘 통과해 태아에게 잘 전달된다. 태아의 경우 5개월 이후엔 목소리를 기억한다. 자주 엄마 배에 얼굴을 대고 목소리를 들려준다.
③임신 5개월이 되면 왼쪽으로 비스듬히 누워라〓태아에게 들어가는 혈관을 막지 않아 영양과 산소를 공급하는 피의 흐름이 원활해진다. 대동맥이 오른쪽으로 지나가기 때문에 오른쪽이 눌리면 엄마와 태아 모두 불편하다.
④가능하면 현장음악을 들려줘라〓수목원, 공원 등을 산책하면서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많이 듣는다. CD 음질에선 자연의 미세한 흔들림 소리를 나타내기가 힘들다. 한편 잔잔한 음악은 뇌의 활성을 돕는다.
⑤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스트레스를 줄여라〓임신부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태반이 수축돼 태아에게 산소가 부족해지기 쉽다. 저체중아나 학습지진아가 될 위험이 크다.
⑥규칙적으로 생활하라〓태아도 모체를 통해 밤과 낮을 구별한다.임신부가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태아의 리듬이 깨지지 않는다.
⑦임신부의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어라〓배를 쓰다듬을 때 태아가 손가락을 빠는 것이 관찰됐다. 단, 너무 세게 문지르면 자궁이 수축될 수 있으므로 주의한다.
▼옛부터 내려오는 전통 태교법▼
①동의보감〓만일 임신부가 화를 내면 태아의 피가 멍들고, 두려워하면 정신이 병들고, 근심하면 기운이 병들고, 크게 놀라면 간질을 갖게 된다.
②영조 때 규합총서 △옷을 너무 많이 입지 말라 △음식을 배불리 먹지 말라 △약을 과용하지 말라 △술을 과용하지 말라 △무거운 짐을 들고 높은 곳을 오르지 말라 △자기보다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내리지 말라 △험한 곳을 다니지 말라 △잠을 너무 많이 자지 말라. 너무 많이 자면 사고력이 둔화된다 △고성을 지르지 말라.
③남부지방에 구전으로 전해지는 칠태도 △아기를 낳을 달이 되면 머리를 감지 말고 높은 곳을 오르지 말며 술을 마시지 말고 무거운 짐을 지지 말며 험한 산길과 냇물을 건너지 않는다 △임신부는 말을 많이 하거나 지나치게 웃거나 놀라거나 겁을 먹거나 울지 않는다 △임신부는 조용히 앉아 아름다운 말을 들으며 성현의 말씀을 외우며 시를 읽거나 붓글씨를 쓰며 예악을 들어야 한다. 또 나쁜 말을 듣지도 하지도 말아야 한다 △임신부는 가로눕지 말며 기대어 앉지도 말며 한쪽 발을 기우뚱하게 굽혀도 안 된다 △임신부는 기품이 높은 물건과 그림들을 항상 가까이 두고 감상한다 △임신 말기에는 금욕해야 한다. 특히 해산달에 금욕하지 않으면 아이가 병들거나 일찍 죽는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진한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