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편두통, '기분탓' 아닌 뇌분비 질환

  • 입력 2002년 10월 13일 17시 20분


《갑자기 눈앞에 빛줄기가 어른거린다. 시야가 흐려지면서 정신이 몽롱해진다.

머리 한 쪽이 쿵쾅대기 시작한다. 구역질이 나면서 토하고 싶어진다. 음식 냄새가 못 견디게 역겹다.

화가 고흐와 정신분석가 프로이트를 평생 괴롭혔고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병, 바로 편두통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편두통 환자는 ‘그때’가 왔다고 느끼면 어두운 방안에 조용히 누워 통증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이제 편두통의 재발을 방지하고 그 원인을 제거하는 약들이 속속 개발 중이어서 희망을 얻고 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 최근호는 미국인 2800만명이 앓고 있는 편두통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두통은 다 편두통이다?〓두통은 머리 내에 원인이 있는 1차 두통과 병이나 사고로 인한 2차 두통으로 나뉜다. 1차 두통에는 스트레스로 인한 긴장성 두통과 원인이 불분명한 군집성 두통 및 편두통이 있다.

편두통은 뇌 신경전달물질의 분비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 원인이다. 음식이나 냄새, 기후 변화, 수면습관 변화 등이 ‘방아쇠’가 돼 발작을 일으킨다.

편두통 환자는 성인 남성의 4∼5%, 여성의 12% 정도다. 발작이 오기 전 환자 10명 중 1, 2명은 눈앞에 지그재그로 번개가 치거나 시야가 희미해지는 등 전조(前兆)가 나타난다. 그러나 전조가 없고 그저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느끼면서 수 십 분에 걸쳐 점점 머리가 아파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개 구역질이나 구토가 동반되며 빛과 소리, 냄새에 매우 민감해진다. 긴장성 두통은 이 가운데 하나에만 민감하지만 편두통은 이들 모두를 참기 어려운 것이 특징.

그러나 항상 명확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휴스턴 두통클리닉의 니난 매튜 박사는 “일이나 다른 활동을 못할 만큼 반복되는 두통은 모두 편두통”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미국의 많은 신경학자들은 다른 심한 두통에도 일반적인 두통약 대신 편두통 치료제를 쓰는 게 낫다고 주장한다.

▽편두통에 대한 오해〓편두통이라고 해서 꼭 머리 한 쪽만 아픈 것은 아니다. 한 쪽만 아픈 사람은 편두통 환자의 60%, 나머지 40%는 양쪽이 다 아프다. 대체로 매일 아프지는 않지만 한 번 아프면 심한 것을 편두통이라고 본다.

머리가 아프고 구토가 있어서 뇌종양 증상과 혼동되기도 한다. 편두통은 간헐적으로 갑자기 나타나고 얼마간 지속되다 없어진다.

그러나 뇌종양이 있으면 지속적으로 아프며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진다. 또 뇌종양으로 인한 구토와 두통은 주로 아침에 나타난다.

편두통이 심하면 뇌중풍(뇌졸중)이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뇌중풍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전조가 있는 편두통 환자 중 일부만 뇌중풍이 온다. 실제로는 전조가 없는 편두통을 앓는 사람이 훨씬 많다.

▽편두통의 치료〓편두통이 재발하는 횟수와 강도를 줄이기 위한 예방약으로 항우울제가 많이 쓰인다. 지난달 영국 런던에서 열린 편두통 학회에서 최고 화제는 ‘토피라메이트’라는 성분의 간질약(상품명 토파맥스). 환자 500명을 대상으로 시험한 결과 편두통 발작 예방효과가 뛰어났다. 그러나 아직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 공인을 받지 못한 상태다.

이 밖에 고혈압 약으로 쓰이는 ‘베타 블로커’와 주름살 제거에 쓰이는 보록스 주사도 편두통 예방 효과가 있는 것이 입증됐다.

발작이 일어나면 이를 멈추게 하는 치료약을 쓴다. 주로 ‘트립탄’ 계열의 약물인데 통증이 최고조에 달한 뒤에도 통증을 멈추게 하는 효과가 있다.

특정 기구를 사용해 자신의 근육긴장 정도를 측정한 뒤 긴장을 풀어주는 ‘바이오 피드백’요법은 외국에서는 많이 사용되지만 국내에는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

(도움말〓경희대 의료원 신경과 이태규 교수)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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