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도 몇 번 강도를 당한 경험이 있어서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도망가자.’
다른 캐릭터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는데, 그때였습니다.
“잠깐, 아이부끄워라님, 저기요….”
“무, 무슨 일이세요?”
“님, 여자세요?”
하하하, 그는 여자친구를 사귀려고 저를 쫓아다닌 것이었습니다. 온라인게임 레드문(www.redmoon.co.kr)에서는 캐릭터와 아이디를 보고 성별은 알 수 있지만 나이는 알 수 없거든요. 그 친구는 제가 젊은 여성인 줄 알았나 봅니다.
“이봐요 학생 저는 ㅎ”까지 자판을 치고 잠시 멈칫했습니다.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호호…, 여자 맞아요.”
이후 제 환심을 사려는 그 친구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였습니다. 늘 제 곁을 따라다니며 몬스터에게 대신 맞아주기도 하고, 저를 괴롭히는 다른 캐릭터를 혼내주기도 하고, 그는 저의 ‘수호신’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며칠을 그 친구와 함께 즐겁게 게임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친하게 지내는 여고생 연주(가명)의 캐릭터가 제 앞에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순간, 주위가 썰렁∼해졌습니다.
“할머니요? 아이부끄워라님이 할머니예요?”
그러자 연주가 말했습니다.
“님, 레드문 할머니 모르세요? 신문 방송에 안 나온 데가 없는데 하나도 못 보셨어요?”
“저를 속이셨군요…, ㅜ.ㅜ”
“무슨 소리야, 난 속인 적 없어. 내가 언제 내가 남자라고 한 적 있남? 언제 내 나이 물어나 봤어? 〓^^〓”
▼에필로그▼
우연한 기회에 동아일보에 글을 쓰면서 저는 일약 ‘유명인사’가 됐습니다. 다른 신문이나 잡지 방송에서도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레드문’에서 저를 모르는 사람은 ‘간첩’이라는 얘기가 나돌 정도랍니다.
전화도 많이 받고, e메일도 많이 받습니다. 60평생 산전 수전 다 겪은, 저처럼 감정이 메마른 늙은이에게도 이런 경험은 정말이지 굉장히 설레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사춘기 소녀가 된 것 같은 기분, 이것은 여러분이 제게 주신 선물입니다.
여러분, 평∼생, 즐겁게 사세요. 게임처럼요!
shyang45@yahoo.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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