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본 세상]세계 게놈전문가 학술회의

  • 입력 2002년 11월 12일 17시 54분


실리콘밸리가 미국의 정보산업 중심지라면 하버드대와 MIT가 있는 보스턴은 생명공학의 메카다. 지난달 초 이 곳에서 세계의 게놈 전문가들이 모인 가운데 학술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의 구호는 ‘1000달러 게놈 시대를 향하여’. 병원에서 1000달러만 내면 혈액검사 하듯 게놈을 해독해 CD 한 장에 담아주겠다는 것이다.

A G C T 네 종류의 글자로 기록된 30억 개의 유전정보를 CD에 담아 이를 컴퓨터로 분석하면 개인이 치매나 심장병 그리고 유전성 암에 걸릴 확률 심지어는 얼마나 살 수 있을지도 알 수 있다고 한다. 또 개인마다 다른 체질까지 알아내 부작용 없고 효과 만점인 ‘맞춤약’도 처방 받을 수 있다는 것. 사람의 설계도인 게놈은 30억 개의 글자로 기록돼 있다. 이 가운데 0.1%인 300만 개가 개인마다 달라 질병에 대한 감수성과 체질의 차이가 생긴다.

인간게놈프로젝트는 12년 동안 30억 달러의 연구비가 투입돼 겨우 한 사람의 게놈을 해독했다. 이렇게 보면 1000달러에 게놈을 해독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로 보인다. 하지만 이 회의에 참가한 대부분의 과학자는 10년 안에 1000달러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회의를 조직한 게놈연구소 크레이그 벤터 회장은 71만2000달러를 주면 올해 말까지 그 사람의 전체 염기서열을 해독해주겠다고 주문을 받고 있을 정도다.

90년대 초반 과학자들은 수작업으로 하루에 5000개의 염기서열을 해독했다. 하지만 요즘의 최신 기계 한 대는 하루 100만 글자를 해독한다. 이번 회의에서 영국의 한 회사는 하루에 개인의 유전자 지도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거의 완성됐다고 발표했다.

개인의 유전정보가 제대로 분석만 된다면 미리 질병 가능성을 파악해 예방약을 쓰거나 생활습관을 바꿈으로써 ‘사후 약방문’격의 치료 중심 의학에 혁명적인 변화가 올게 분명하다.

하지만 불리한 유전정보를 가진 사람은 취직, 보험가입, 결혼 때 차별을 받거나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힐 가능성이 있다. 설사 1000달러에 개인의 게놈을 해독했다 하더라도 A G C T 같은 암호인 유전정보에 대한 ‘해석’ 기술은 아직 걸음마 단계여서 문제가 없는 사람에 대해 “5년 뒤 암에 걸린다”고 생사람을 잡을 수도 있다.

이미 국내에서도 혈우병 등 수십종의 유전성 질환에 대한 유전자 검사가 시작돼 병원마다 개인의 유전정보가 쌓여가고 있다. 또 자궁 착상 전 유전자 검사나 태아 유전자 검사를 통해 아기를 선별해 낳거나 낙태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쌓여갈 개인의 유전정보가 유출되거나 악용되지 않도록 ‘유전정보보호법’을 하루빨리 제정해야 한다.

신동호기자 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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