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인터넷 대란]사이버세상 '9시간 암흑'

  • 입력 2003년 1월 26일 18시 54분


사상 초유의 국가적 인터넷 불통사태는 이용자 불편과 물질적 피해를 뛰어넘어 엄청난 사회 문화적 패닉(공황)현상을 빚어내고 있다.

인터넷에 의존해온 시민들은 갑자기 세상과 ‘격리’된 듯한 박탈감은 물론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현실에 황당함을 느꼈다고 말하고 있다.

국가 전체의 인터넷망이 9시간 이상 속수무책으로 ‘뇌사’상태에 빠진 이번 사태는 국가체제가 ‘비상상황’에 대응할 채비를 못 갖춘 것이 아니냐는 불신과 불안감마저 증폭시키고 있다.

▽가시적 피해=철도 항공 고속버스 등 인터넷에 의존하는 예약서비스가 모두 마비돼 이용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평소 인터넷 예약 비중이 60%에 가까운 철도의 경우 이용자들이 전화로 문의 방향을 바꾸는 바람에 전화 불통사태까지 겪었다.

또 인터넷으로 신용정보가 조회되지 않아 식음료, 유통업체들은 손님들에게 현금을 요구했으며 취업준비생이나 대학생들은 기한에 맞춰 입사지원서 등을 제출하는 데 차질을 빚기도 했다. 특히 e메일까지 ‘먹통’이 되는 바람에 지원서를 낸 사람들도 면접 일자나 합격 여부를 확인하지 못해 발을 굴렀다.

삼성 현대 등 대기업 인터넷 쇼핑몰은 설 대목인데도 불구하고 평상시에 비해 매출액이 약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이른바 ‘닷컴’의 경우 피해가 더 심각해 인터넷 서점 예스24와 인터넷경매업체 옥션의 매출도 30% 이상 격감했다. 일부 PC방은 갑작스러운 인터넷 마비로 환불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투자은행에 다니는 박진규씨(27·리만브러더스)는 “고객사의 재무제표를 다운받아야 했으나 인터넷 연결이 안돼 업무를 전혀 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정부의 ‘전자정부’ 홈페이지(www.egov.go.kr)도 접속되지 않으면서 민원 신청서비스 393종이 중단됐다. 병무청 홈페이지도 접속되지 않아 입영 예정자들이 신체검사 날짜 등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국방부의 보안과 직결되는 통신망은 일반 인터넷과 연결되어 있지 않아 피해가 없었다.

일부 온라인 게임업체들은 접속 불능으로 인해 수억원의 피해를 보게 되자 서버안전을 담당하는 한국인터넷데이터센터(KIDC)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신적 공황=인터넷 광고대행업체에 근무하는 최영씨(28)는 “매일 인터넷을 통해 배너광고를 분석했으나 이번 사태로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며 “마치 내가 아무 필요도 없는 존재가 된 것처럼 당황스럽고 식은 땀이 났다”고 말했다.

26일 야후 네이버 등 인터넷 포털사이트 게시판에는 “세상에서 단절된 것 같고 물이나 전기가 안 나오는 것보다 더 답답하다” “무섭다” “악몽이다”며 ‘공포감’을 토로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국가적 인터넷망 마비사태를 보면서 미래의 전쟁 시작은 여기서부터 출발하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전기 통신 운수 보건… 망이 마비된 후 전쟁이 일어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너무도 뻔하다”며 정부의 허술한 대응을 지적하는 글이 이어졌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黃相旼) 교수는 “네티즌들은 ‘나와는 직접적 관계가 없는’ 9·11테러보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 세상’에서 더 큰 충격을 느끼는 상황이 됐다”며 “우리 속에 갇힌 동물이 탈출을 시도하는 것처럼 심한 좌절감을 느끼지 않으려면 시스템 다운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생길 수 있는 현실’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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