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커뮤니케이션의 이재웅 사장(35)에게는 디지털(digital)과 리테라티(literati·지식계급)의 합성어인 ‘디제라티(Digerati)’란 수식어가 잘 맞는다. 인터넷과 미디어에 대해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
18일과 2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다음커뮤니케이션 12층 회의실에서 그를 만났다. 미디어본부의 석종훈 본부장(부사장)도 동석했다. 얘기 도중 인터페이스(접점), 매트릭스, 뉴스, 네트워크, 소통 등의 단어가 자주 거론됐다.
●은유로서의 매트릭스
기자=우리는 지금 12층의 14개 회의실 중 ‘즐거운 방’에 있다. 각각의 방은 ‘따뜻한 방’,‘포근한 방’ 등의 문패를 달고 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네모난 방이 컴퓨터 폴더 또는 매트릭스 같다. 방 이름들은 매트릭스의 기계성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애처로운 인간상을 메타포(은유)하는 것 같다.
이재웅=재미있는 상상이다. 그러나 내가 정의하는 매트릭스는 인간과 인간이 연결되는 네트워크이다. 영화 속 매트릭스는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눈을 가려 진실을 볼 수 없게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매트릭스는 인터넷으로 인간끼리의 소통(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 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인간의 소망을 실현할 수 있다.
(이재웅 사장은 연세대 대학원에서 전산과학 전공, 심리학 부전공을 했으며 프랑스 파리6대학에서는 인지과학 박사과정 연구원을 지냈다. ‘다음’의 전 직원은 서로의 이름에 ‘님’을 붙여 부른다. 이 사장은 ‘재웅님’으로 불린다.)
기자=지나친 낙관론 아닌가. 인터넷 공간에서는 신체적 자아와 정신적 자아가 분열을 일으켜 예상치 못한 카오스(무질서)를 낳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인터넷 게시판의 욕설같은.
이재웅= 카오스는 없다. 인터넷 게시판의 욕설은 현실세계의 투영일 뿐이다. 술집에서 또는 길거리에서 들을 수 있는 욕설이 인터넷에 반영된다. 이야기가 음지에서 양지로 걸어나왔다.
●미디어에 대하여
기자=미디어 분야를 강화한 배경은 무엇인가.
이재웅=이용자들과의 접점을 찾고, 그들을 포털사이트로 이끄는 흡인력을 갖기 위함이다. 그것이 곧 수익모델이기도 하다.
기자=다음의 미디어사업 진출은 미국의 인터넷 전문기업 아메리카온라인(AOL)이 2000년 미디어기업 타임워너를 합병한 전례의 실현을 한국사회에서 예고하는 것 같다.
이재웅=전통적 의미의 언론들이 예의 주시한다. 오히려 그들의 경쟁자는 사람들의 시간일 텐데…. 미디어는 신문과 방송처럼 정돈된 형태의 언론이고, 언론은 곧 권력이라는 사회적 편견이 여전히 존재한다. 나는 이용자가 곧 권력이라고 생각하기에 사회의 다음(多音)을 잘 전달할 것이다. 개인과 사회를 잇는 통로라는 넓은 의미의 미디어를 추구한다. 영화와 광고(CF)야말로 현대사회의 가장 강력한 미디어다.
기자=뉴스 이외의 미디어사업도 계획하고 있다는 뜻인가.
이재웅=미국 AOL 타임워너나 독일 베텔스만 같은 미디어 서비스그룹을 ‘다음’이 벤치마킹할 기업으로 본다. 적극적 인수합병을 포함한 해외진출을 고려하고 있다. 제작자가 아닌, 전달자(극장)가 될 것이다. 프랑스 문화비평가 기 소르망은 21세기 맞춤서비스의 확산으로 매스미디어가 마이크로미디어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나는 ‘매스-마이크로미디어’를 동시에 추구한다.
●인터넷 공간의 뉴스
기자=2400만여명의 네티즌이 인터넷 커뮤니티 250만개를 개설한 다음 ‘카페’의 이름에 주목한다. 18세기 프랑스 혁명을 도모했던 프랑스의 카페에서 아이디어를 냈는가.
이재웅=맞다. 파리유학 시절 1.5프랑을 내고 커피를 마시던 카페를 생각했다. 프랑스 카페는 부담 없는 토론장이다. 아침에는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낮 시간엔 노인들이 체스를 두고, 저녁에는 동호인들이 클럽활동을 하는 바로 그 카페를 인터넷에서 구현하고 싶었다.
석종훈=‘미디어다음’은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광장)’에 비유할 수 있다. 허공에서는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고 지상에서는 열띤 토론이 벌어지는 장소, 그곳의 담론이 곧 뉴스이다.
기자=미디어로서의 힘을 느끼는가.
석종훈=미디어다음의 자체 생산 기사는 전체 게재 기사의 1% 미만이다. 그러나 발상을 전환하면 제휴사 제공 뉴스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또 다른 뉴스가 된다. 19일 태풍 ‘소델로’가 남부지방을 강타했을 때 각 지역 네티즌들이 기상속보를 실시간으로 생중계한 일, 지난달 그룹 클론의 강원래씨가 ‘원래’라는 이름으로 직접 장애인 관련 글을 올린 일 등은 인터넷 뉴스의 무한한 잠재력을 보여준다. 우리가 꽃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것이 꽃이 되는 것처럼 우리가 뉴스라고 부르면 곧 뉴스가 된다. 네티즌들의 피드백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감지한다.
기자=미디어다음이 추구하는 뉴스는 무엇인가.
이재웅=이용자들이 원하는 정보. 엔터테인먼트, 재테크 등 이용자들이 현실적으로 관심을 갖는 분야에 집중한다. 정치적 의견이 엇갈리는 사안에 대해서는 보수와 진보의 뉴스를 동일 비중으로 함께 제시해 중립을 지킨다. 그것이 ‘오마이뉴스’와의 차이다.
기자=수익을 추구하는 주식회사가 미디어를 운영하면 뉴스의 품격과 상업성 사이에서 고민할 것 같다.
이재웅=품격 없는 상업성은 이용자들이 먼저 알고 떠난다.
기자=뉴스를 전달하는 레토릭(수사학)이 인터넷 미디어에서는 다르게 구현될 것인가.
이재웅=그렇지 않을 것이다. 단문과 구어체는 테크닉에 불과하다. 여러 미디어간의 무한경쟁시대에는 사물에 대한 분석 능력이 핵심이다. 옛날 사진사는 독보적 기술의 소유자였지만 누구나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시대에는 어떻게 의미 있는 장면을 포착하느냐가 관건이다. 바야흐로 ‘진검승부’의 시대다.
●한국 디제라티의 일상
기자=지적인 휴가를 보내는 방법이 무엇이라고 생각 하는가. 움베르토 에코는 유레일패스로 유럽 대륙을 여행하려는 젊은이에게 이탈리아의 지리학자 조반 바티스타 라무지오의 ‘항해와 여행에 대해서’라는 책을 권했다.
이재웅=지적 호기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SF영화를 추천한다. ‘블레이드 러너’,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공각기동대’ 등의 SF영화를 보면서 관련 철학서적을 읽는 것은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키울 것이다. 영화에서 주장하는 미래가 과연 실현 가능한지 인터넷을 검색해보고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는 경험도 재미있다.
기자=인터넷 항해(서핑)가 지나치면 중독 아닌가.
이재웅=매일 인터넷을 사용한다고 해서 인터넷 중독이라면 이미 사람들은 텔레비전과 책에 중독돼 있다. 인터넷 중독은 없다. 게임중독이나 음란물중독만 있을 뿐.
(한달에 4권의 책을 읽으려고 노력한다는 이사장은 종종 직원들에게 사내 e메일을 통해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한 뒤 수십권씩 손수 구입해 사무실에 비치한다. A L 바라바시의 ‘링크’, 리처드 헌터의 ‘유비쿼터스’, 글렌 예페스가 엮은 ‘우리는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나’, 프리초프 카프라의 ‘히든 커넥션’ 등이 최근 추천도서이다.)
기자=전방위 이미지 메이킹이 중요한 시대에 사진 촬영을 극도로 꺼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사장은 사진기자의 촬영을 무척 쑥스러워했다.)
이재웅=인위적 연출이 싫을 뿐이다. 사진이라는 시뮬레이션에는 아우라(원작만이 갖는 고유한 분위기)가 없다. 유럽에서 2년 동안 살면서 스냅사진을 딱 3장 찍었다.
기자=한국 디제라티의 뇌구조를 들여다보고 싶다. 늘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가.
이재웅=세상에는 운이 좋은 사람과 운이 나쁜 사람, 생각하는 사람과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과 옮기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나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며, 생각하는 것을 실천에 옮기려 노력할 뿐이다.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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