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인터넷]“보든지 말든지”… 부실 웹사이트 수두룩

  • 입력 2003년 9월 1일 18시 05분


누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보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웹 사이트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 관악구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컴퓨터 교육을 받는 시각장애인들. -사진제공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누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보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웹 사이트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 관악구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컴퓨터 교육을 받는 시각장애인들. -사진제공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기본적인 것을 빠뜨리면 어떻게 하나. 부실 설계는 이제 제발 그만하자.”

건설현장 얘기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앞서 간다는 한국의 인터넷 웹사이트의 또 다른 실태다. ‘부실의 현장’은 청와대 정보통신부 보건복지부 등 정부 기관은 물론이고 금융기관 언론기관을 가리지 않고 곳곳에 산재해 있다.

부실설계라고 하는 이유는 비록 신체장애가 있더라도, 저속통신 환경이라 할지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무선인터넷을 사용할 경우에도 호환이 쉽도록 웹사이트를 구축해놓지 않았기 때문. 정보기술(IT)전문가들은 이를 ‘웹 접근성이 낮다’고 표현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이미지에 설명문(대체 텍스트·이미지에 마우스 포인트를 갖다 대면 그 이미지를 설명하는 내용의 글자가 뜨는데 이 글자를 가리키는 말)을 달지 않는 것. 설명문이 없는 아이콘을 만나면 시각장애인에게 화면의 글자를 읽어주는 ‘스크린 리더’는 이상한 영어 단어만 읊어대 사용자를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청와대와 정통부 홈페이지에는 시각장애인용 아이콘이 별도로 있다. 하지만 설명문을 달지 않아 역설적이게도 시각장애인들은 이 아이콘을 찾지 못한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의 현준호 연구원은 “기본을 지켜 웹을 구축하면 노약자나 장애인도 인터넷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전자정부도 ‘부실 설계’=웹 사이트의 접근성을 판단해 보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익스플로러의 메뉴 항목 중 ‘도구-인터넷옵션-고급’을 차례로 선택한 뒤 ‘그림표시’ 항목의 체크 표시를 지워보면 된다.

이런 상태로 청와대 홈페이지(www.president.go.kr)를 방문해 봤다. 아이콘이 있었던 자리에 있어야 할 설명문은 곳곳이 비어 있었다. 심지어 시각장애인용 홈페이지로 연결되는 아이콘에도 설명문이 없었다. 미국 백악관의 경우 설명이 없는 이미지는 하나도 없었다.

전 국민을 상대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전자정부 홈페이지(www.egov.go.kr)는 사정이 더 심했다. 약 40여개의 아이콘 중 설명문이 붙어 있는 경우는 하나도 없었다. 문자전용 홈페이지로 연결되는 아이콘도 있지만 역시 설명문은 붙어 있지 않았다.

마우스 사용자 중심으로 설계된 것도 큰 문제. 일시적인 장애로 마우스를 사용하기 불편하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을 위해 키보드의 ‘탭(Tab)키’를 이용해서도 웹상의 항목을 선택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청와대 홈페이지를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이용해 본 결과 탭 키를 이용해서는 인터넷 주소창에서 홈페이지로 빠져나오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부 이성일(李成一) 교수는 “누구나 신체기능이 떨어지면 장애인에 가까워지는 만큼 접근성을 높인 웹사이트 구축은 필수”라며 “특히 장애인과 노인에게 더욱 요긴한 전자정부의 각종 서비스가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접근성 보완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조금만 노력하면 개선 가능=아이콘마다 설명문을 다는 것은 프로그램을 짤 때 ‘alt=’를 입력하고 간단한 문장만 넣으면 되는 일이다. 정부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2002년 1월 정통부는 ‘장애인 노인 등의 정보통신 접근성 향상을 위한 권장지침’을 만들었다. 문제는 권장사항이라는 이유로 정부조차 이를 지키지 않는 것.

접근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 올 3월 정부와 공공기관, 시민단체, 웹 개발 업체 등 300여 사업장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74%에 해당하는 기관이 ‘웹 접근성’이란 용어를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했다. 정부가 만든 권장지침을 알고 있는 비율은 6%에 불과했다. 미국 정부는 관공서나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홈페이지는 웹 접근성 의무를 반드시 지키도록 하고 있다. 또 이를 지키지 않는 기업은 연방정부에 물품을 납품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숙명여대 원격대학원 권순교(權順敎) 교수는 “미국의 경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공공기관에 접근을 못하게 되면 소송을 할 수 있을 정도”라며 “하루빨리 접근성을 보장하는 강제 법규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정보문화운동협의회 이의순 사무국장은 “그래픽과 애니메이션, 동영상을 이용해 웹사이트를 화려하게 꾸미는 데만 신경을 쓸 게 아니라 인터넷의 기본 기능인 의사소통 확대를 위해 기본적인 것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허진석기자 jameshuh@donga.com

▼선진국 홈페이지 장애인 위해 ‘웹 접근성’ 최우선▼

한국 공공기관의 웹사이트가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기초적인 규칙을 지키지 않는 데 비해 미국은 달랐다.

백악관 홈페이지는 물론이고 IBM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등 첨단 정보기술 업체들도 접근성의 규칙을 잘 지키고 있다. 인지장애를 겪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홈페이지에는 ‘팝업 창’은 물론이고 ‘움직이는 그림’조차 사용하지 않고 있다.

웹 접근성을 높인다는 것은 ‘누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웹사이트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다’는 개념이지만 초기에는 장애인 때문에 촉발된 문제다.

이 때문에 선진국 정부들은 장애인이 손쉽게 웹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각종 강제 규정을 두고 있다.

호주는 자국에서 홈페이지를 만들거나 자국 서버에 웹사이트를 저장해 운영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모두 장애인차별금지법(DDA)의 규정을 의무적으로 준수토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2000년 12월 1일부터는 국제기준(W3C의 WCAG)을 적용한 접근성 시험을 통과해야 웹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영국은 1999년 말에 이미 전자정부 사업을 총괄하는 행정기관(e-Envoy)이 정부 웹사이트가 준수해야 할 의무조항을 마련했다.

미국은 1998년 정부에서 구입할 정보통신기기의 표준을 규정한 장애인재활법 508조를 개정해 보편적 접근이 가능한 웹이나 정보통신기기의 생산을 확대했다.

일본은 2000년 11월부터 모든 관공서와 공공기관이 우정성이 만든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을 준수토록 하고 있다. 또 미국의 재활법 508조와 같은 수준의 일본표준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은 정보통신부에서 만든 2002년 1월 지침이 잘 지켜지고 있지 않는 가운데 한국정보문화운동협의회가 웹 접근성을 평가하고 수정하는 프로그램(A-Prompt)을 홈페이지(web.icm.or.kr)에서 무료로 제공하며 ‘웹 접근성 향상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허진석기자 jameshuh@donga.com

▼참여 기업-기관▼

▽공동주최사(20개)=동아닷컴 KT KTF 데이콤 하나로통신 다음커뮤니케이션 NHN 드림위즈 영진닷컴 야후코리아 하나로드림 엠파스 한국마이크로소프트 프리챌 네오위즈 SK커뮤니케이션즈 넷마블 에듀박스 인터정보 컴트루테크놀로지 ▽공동주최기관(6개)=한국개발연구협의체(CODS) 정보보호실천협의회 학부모정보감시단 한국컴퓨터생활연구소 한국사이버감시단 서울지방경찰청사이버범죄수사대 ▽후원(2개)=정보통신부 정보통신윤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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