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매미’의 순간 최대풍속이 초속 60m였을 당시를 목격한 제주 북제주군 한경면 고산리 이장 고상후씨(51)는 “매년 강풍을 겪었지만 이런 태풍은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12일 오후 4시10분 고산리와 이날 오후 6시 제주시 지역에 제주도민들이 악몽으로 기억하는 1959년 ‘사라’ 태풍(초속 46.9m)보다 훨씬 강력한 매미가 불어 닥치자 거리는 공포에 휩싸였다.
공터에 세워진 대형 컨테이너가 순식간에 뒤집어졌다. 가로등과 교통신호등은 힘없이 날아가 도로에 나뒹굴었다. 공중전화 부스와 이동통신용 안테나도 맥없이 쓰러졌다. 대형 선전탑과 간판은 종잇장처럼 구겨져 날아갔다. 해안에는 주택을 집어삼킬 듯한 파도가 휘몰아쳤다.
전기가 끊어지고 통신마저 두절되자 마을은 온통 두려움에 잠겼다. 이웃집에 도움을 청하러 갈 수도 없었다. 강풍에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어지자 도로에 인적이 뚝 끊겼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서부관광도로는 차량 운행이 통제됐다. 태풍으로 이 도로가 통제되기는 처음이었다.
제주시 용담동 해안도로 변에서 횟집을 하는 김인규씨(54)는 “파도가 집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며 “그러나 아무런 대책도 없이 암흑과 두려움 속에서 태풍이 지나가기만 기다렸다”고 말했다.
제주시 연동 고층아파트에 사는 김정희씨(37·주부)는 “베란다 창문이 휘어질 정도로 비바람이 몰아쳤다”면서 “겁에 질린 아이들을 달래느라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태풍이 불 때마다 강풍이 휩쓸고 지나가는 고산리 주민들은 다른 지역 주민들에 비해 ‘면역성’을 갖고 있지만 이번만은 예외였다.
고산리 서원순 할머니(81)는 “살다 살다 이런 바람은 생전 처음”이라며 “집 유리창이 깨져도 치우지 못하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제주 주민들은 “매번 강풍과 폭우에 시달리지만 이번처럼 바람이 살인적으로 느껴지기는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제주=임재영기자 jy788@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