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매미' 남부 강타]바닷물 순식간에 상가지하 덮쳐

  • 입력 2003년 9월 13일 18시 34분


태풍 ‘매미’가 일으킨 해일로 인해 10여명이 수몰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남 마산시 해운동 해운프라자 건물 지하주차장에 인근 서항에서 밀려온 통나무 수십 개가 떠다니고 있다. - 마산=강병기기자·뉴시스
태풍 ‘매미’가 일으킨 해일로 인해 10여명이 수몰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남 마산시 해운동 해운프라자 건물 지하주차장에 인근 서항에서 밀려온 통나무 수십 개가 떠다니고 있다. - 마산=강병기기자·뉴시스
엄청난 참사였다.

해안도시 경남 마산을 강타한 태풍 ‘매미’는 불과 1, 2시간 만에 이 지역에서 수백억원 대의 재산피해와 수십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3일 날이 밝으면서 수마가 할퀴고 간 현장을 둘러본 마산 시민들은 이번 태풍이 사라호를 능가하는 초특급이어서 피해를 막기는 불가항력이었지만 당국이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바람에 피해를 키웠다는 점에서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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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몰 현장=태풍이 들이닥쳤을 당시 노래방 등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10여명이 지하 1∼3층에 갇힌 것으로 알려진 마산시 해운동 해운프라자.

지하 3층, 지상 6층의 상가건물인 이곳에서는 12일 밤부터 소방대원 100여명이 펌프차 4대, 양수기 10대 등을 동원해 물을 퍼냈으며 13일 밤 12시 무렵 지하 2층까지 찬 물을 대부분 퍼냈다.

이 과정에서 소방대원들은 오후 9시경 지하 2층 식당에서 20대 남녀 각 1구의 시신을 수습했다.

소방서 관계자는 “이들은 지하 3층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온 사람과 노래방을 찾은 손님으로 밝혀졌다”며 “14일 오전까지 지하 3층에 찬 물을 모두 퍼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해운프라자 주변에는 실종자 가족 수십명이 발을 동동 구르며 “작업이 왜 이리 더디냐”고 애를 태웠다.

마산소방서 현장 지휘소에는 손모씨가 “딸(21)이 해운프라자 지하에 있을 것”이라며 신고하는 등 오후까지 22명이 실종신고를 했다.

또 서항부두 맞은편 지하 3층, 지상 19층의 주상복합 건물인 경민시티빌에서도 군 특수부대와 소방대원들이 투입돼 지하층의 물빼기 작업이 이날 밤늦게까지 진행됐다.

주민들은 “12일 밤 지하 노래방과 주차장에서 2, 3명이 빠져 나오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처참한 시가지=봉암동 마산자유무역지역에서 양덕동과 중앙동을 거쳐 월영동으로 이어지는 6km의 해안도로변은 한마디로 쑥대밭이었다.

수백개의 상가와 점포는 강풍에 해일까지 덮쳐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서져 있었다. 대형 건물들의 1층은 대부분 구멍이 크게 뚫렸고 남아 있는 간판이나 철구조물들은 뒤틀리고 찢겨져 폭격을 맞은 듯했다. 횟집들이 밀집한 어시장도 상황은 마찬가지.

해안도로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한광씨(36)는 “12일 밤 집채만 한 파도가 덮치면서 간판과 지붕 구조물, 주유기 등이 망가져 수천만원의 피해를 보았다”며 “10년째 영업 중이지만 그처럼 사나운 바람과 파도는 처음 봤다”고 말했다.

도로 곳곳은 인근 공장에서 유출된 시커먼 기름으로 뒤덮여 악취가 진동했고, 항구에 야적해 두었던 10여m 길이의 원목 수백개가 파도에 휩쓸려 와 마산시내 도로 곳곳을 ‘점거’하고 있었다.

▽‘공무원들 뭐 했나’=해운프라자 주변지역 상인들은 “건물 지하 노래방 등에 있던 손님들이 비바람을 피하기 위해 그대로 머물다 참변을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행정당국에서 강제로 대피시키는 등 사전 조치를 취했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태풍의 통과시간이 이 지역의 만조시간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행정당국이 너무 소극적으로 대처했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있다.

추석 연휴여서 행정기관들이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구축하지 못해 피해가 커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마산시 재해대책상황실 관계자는 “태풍이 내습하기 전 유선방송사와 공중파 방송에 협조를 구해 ‘태풍이 만조시간에 상륙해 해일이 우려되니 저지대와 해안지역 주민들은 안전에 만전을 기하라’는 자막을 계속 내보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비바람이 워낙 드센 데다 정전으로 어두웠고, 순식간에 바닷물이 덮쳐 조치가 쉽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해운프라자를 관할하는 월영동사무소의 한 직원은 “해안선에서 500m 이상 떨어진 지역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마산=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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