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매미’ 로 딸과 사위 잃은 아버지, 추모 사이트 만들어

  • 입력 2003년 9월 29일 14시 01분


태풍 '매미'로 졸지에 딸과 예비 사위를 잃은 한 50대 아버지가 이들을 애타게 그리워 하는 인터넷 추모 카페를 열어 네티즌 사이에 잔잔한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12일 태풍으로 상가 건물 지하가 침수돼 희생됐던 서영은 씨(23)의 아버지 서의호 포항공대 산업공학과 교수(51)는 최근 딸과 사위 정시현(28)씨 이름을 넣은 추모 사이트(cafe.daum.net/sihyunyoungeun)를 열었다.

사이트에 접속하면 팝 그룹 Westlife의 노래 ‘My love’가 흐르면서 두 사람이 지난달 약혼기념 일본 여행 때 찍은 사진과 “20대의 꽃다운 나이에 하늘 나라로 간 두 사람의 아름다운 사랑과 인생, 그리고 그들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란 문구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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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이트 왼편에는 ‘시와 추모의 글’‘위로와 격려의 글’ ‘살아온 모습’ 등 13개의 추모 항목이 나열돼 있으며 각 항목마다 두 사람의 다정했던 모습과 이들을 기리는 주변 친지들의 애절한 사연이 가득하다.

특히 ‘영은으로부터’ 라는 게시판에선 서영은씨가 생전 부모님께 쓴 ‘올해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라는 글이 올라와 있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더 안타깝게 한다.

“저는 올해에 시현이 오빠랑 결혼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엄마 아빠를 설득하기 위해 이렇게 리스트를 준비했습니다”로 시작하는 이 글은 두 사람이 함께 해야 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다.

아버지 서씨는 딸 영은씨에게 “8월 결혼을 다시 10월로, 또다시 내년 5월로 연기했던 아빠의 부족함이 한없이 원망스럽다. 오늘도 네가 가슴이 저리도록 보고 싶어 많이 울었어. 지금이라도 ‘아빠’하고 나타날 것만 같은 우리 딸, 널 꿈에서 볼 수 있었으면…”이란 글을 써서 애끓는 부정을 토로했다.

또 사위 정시현씨에게는 “부디 하늘나라에서 영은이를 잘 아껴주고 사랑해서 우리 다시 만날 날까지 행복하길…”라고 말해 이승에서 못다이룬 사랑을 저승에서라도 꽃피우길 염원했다.

9월 18일에 개설된 추모 까페에는 현재 516명이 가입돼 있으며 두 사람의 명복을 비는 방문객들의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서씨는 “먼저 간 딸을 사이버 공간에서나마 곁에 두고 얼굴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고 싶어 사이트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내년 결혼을 앞둔 정시현씨와 서영은씨는 지난 12일 해일로 침수됐던 마산 해운 프라자 지하에서 함께 대피하던 중 서씨가 거센 물줄기에 휩쓸려 내려가자 정씨가 이를 구하려 건물 아래층 으로 내려갔다가 함께 변을 당했다. 두 사람은 지난 16일 영혼결혼식을 올리고 합장됐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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