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내한한 미국 IBM의 연구물리학자 스튜어트 파킨 박사는 물리학 연구에 몰두해야 할 이유를 이같이 말했다. 물리학은 대표적인 기초학문 분야이지만 그 연구성과를 곧바로 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파킨 박사는 1997년 거대자기저항(GMR) 구조를 이용한 디스크 드라이브 설계 기술을 완성해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용량을 30배 이상 높였다. 자기저항의 변화는 디지털 정보를 기록하는 데 쓰이는데 특히 강력한 GMR를 이용하면 고밀도 디스크를 제작할 수 있다. 그 결과 요즘 컴퓨터에 쓰이는 하드디스크는 모두 GMR 방식으로 제조되고 있고 시장규모가 연간 260억달러(약 30조원)에 이른다. 파킨 박사는 이 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1999년 미국물리연구소가 수여하는 ‘물리학의 산업적 응용상’을 받았다.
현재 스탠퍼드대 응용물리학 자문교수를 겸하고 있는 파킨 박사는 최근 차세대 메모리로 손꼽히는 M램 개발을 주도하며 또다시 물리학의 산업적 응용에 도전하고 있다. M램은 기존의 메모리반도체의 장점을 모두 지닌 것으로 저장용량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빠른 속도로 응답하며 전원이 꺼져도 정보를 저장하고 있는 비휘발성 메모리다. M램이 상업화에 성공하면 컴퓨터 부팅을 위해 1∼2분을 기다릴 필요 없이 전원을 켜자마자 곧바로 원하는 작업을 할 수 있다. 또 초소형 저장장치에 적용됨에 따라 컴퓨터의 소형화와 모바일 컴퓨팅의 가능성을 앞당길 전망이다. 따라서 M램은 산업적 파급력뿐만 아니라 생활의 변혁까지 몰고 올 신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를 비롯해 미국의 HP, 모토로라, 일본의 도시바, NEC 등 세계적인 반도체업계가 M램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탐험가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 새로운 현상을 탐구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작업이 무작정 좋았다는 파킨 박사. 그는 개인적인 ‘흥미’에서 시작한 학문의 열매가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한다.
“연구소에서 얻은 기초연구의 성과를 직접 생산라인에 응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학의 성과를 사람들이 직접 맛볼 수 있도록 말이죠. 그것이 바로 과학, 특히 물리학이 삶의 변화에 기여하는 한 방법입니다.”
이 현 동아사이언스기자 d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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