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추승곤씨(36)의 집 현관문을 열자 큼지막한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머쓱해하는 손님이 거실에 앉기가 무섭게 추씨가 PDP를 켜고 화면에 영상을 틀어 보여준다.
말로만 듣던 고화질(HD·High Definition) TV를 녹화한 영상이다. “HD 영상의 진가를 알려면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게 추씨의 설명이다.
PDP 화면에 나타나는 영상은 정밀 사진을 보는 것처럼 선명했다. 야생동물의 털 한 올 한 올이 다 보이고, 사람 피부의 땀 구멍까지 보일 정도. 아날로그 TV보다는 4배, DVD 화면보다는 두 배나 선명하다는 HD 영상의 위력이 실감나게 느껴졌다.
HD 영상물 시사회는 추씨 집을 찾는 손님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다.
집에 손님이 오면 그는 녹화해 둔 HD 영상물 가운데 그 사람이 가장 좋아할 만한 것을 찾아 틀어준다. 주변 사람에게 HD 영상을 체험할 기회를 주려고 애쓰는 것은 고화질 영상의 묘미를 자신만 누리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HD 영상 시스템이 뭐기에=집안 물건 가운데 ‘보물 1호’로 꼽으라면 추씨는 주저 없이 PDP TV를 꼽는다. 지난해 거금 900만원을 들여 마련한 제품이다. 당시 두 달여간의 사전 시장조사 작업 끝에 HD급 해상도를 갖춘 일본 업체의 제품을 골랐다.
추씨는 “원래는 50인치대 제품을 사려고 했지만 아내의 반대로 가격이 다소 저렴한(?) 43인치 제품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만 해도 40인치대 PDP는 일반화질(SD)급 제품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HD급 제품의 시판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HD TV를 보려면 디지털TV와 함께 반드시 있어야 하는 장비가 셋톱박스. 추씨는 디지털TV 셋톱박스로 90만원대의 삼성전자 제품을 쓰고 있다. 이 장비는 고속 데이터전송 단자(IEEE 1394)를 갖춰 HD TV 프로그램을 PC나 디지털VHS(DVHS) 리코더에 녹화해 둘 수 있다.
그는 이 밖에도 5.1채널 기능의 홈시어터 시스템과 DVHS 리코더를 추가해 HD 영상 감상에 함께 활용하고 있다.
▽마니아 생활은 이런 것=추씨는 평범한 자동차 영업사원이다. PDP를 비롯한 값 비싼 AV기기 때문에 돈 많은 호사가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아내가 주는 용돈을 꼬박꼬박 모아 꼭 필요한 장비만을 구입하는 실속파다.
새 기기를 구입할 때는 쓰던 기기를 중고품으로 처분해 비용을 충당한다. 그는 “요즘에는 인터넷 중고품 거래가 활성화돼 AV기기를 되팔아도 충분히 제값을 받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아무리 비싸도 마음 먹은 제품은 반드시 사고 마는 추씨의 AV기기 수집벽 때문에 결혼 초기에는 부부사이에 다툼도 있었다. 하지만 결혼생활이 8년째에 접어들면서 아내는 남편의 녹화작업을 거들어 줄 만큼 적극적인 후원자가 됐다.
추씨는 HD 영상 전문가로서 인터넷 동호회 활동에도 열성적이다. 인터넷 AV동호회인 ‘AV포럼’(www.avforum.co.kr)에서 HD 영상 관련 필진으로 활약하면서 인터넷 지역커뮤니티인 ‘노원AV’(www.nowonav.com)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동호회 회원들과는 수시로 만나 시청회를 갖고 정보를 교환한다. HD 영상에 관심 있는 회원들을 수시로 초청해 시사회를 열다보니 추씨의 아파트에는 항상 손님이 붐빈다.
▽HD 라이프는 계속된다=국내 지상파 방송사들이 HD방송을 하고 있지만 HD 방송시간은 채널당 한 주에 10시간에 불과해 아직까지 HD 영상소스가 드문 편. 그래서 추씨는 소장가치가 있는 HD 방송은 DVHS 리코더로 녹화해 보관하고 있다. 2002년 월드컵 전 경기, 인기드라마 ‘다모’, 자연 다큐멘타리 등은 그와 가족들이 즐겨보는 HD 녹화물. 위성안테나와 수신기를 별도로 설치해 일본의 BS디지털 위성방송도 시청하고 있다.
지난해 월드컵 때 추씨는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스타가 됐다. 부녀회에서 아파트 주민들의 단체 관람을 위해 동원한 이동 중계차에 자신의 셋톱박스와 안테나를 연결해 한국팀 경기를 HD 화면으로 볼 수 있도록 했던 것. 그는 “월드컵 때 야외에서 단체로 HD 화면을 본 것은 우리 아파트가 유일했을 것”이라고 자랑했다.
이사를 앞둔 추씨는 요즘 새로운 꿈에 부풀어 있다.
“아예 방 하나를 HD 영상물을 볼 수 있는 홈시어터 전용 룸으로 꾸밀 생각입니다. 물론 거실의 PDP와는 별도로 HD급 광프로세싱(DLP) 프로젝터가 새로 있어야겠죠.”
김태한기자 freewill@donga.com
▼HD영상기기 잘 구하려면▼
HD 영상 기기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은 대부분 혼란스럽다는 느낌을 받는다.
HD TV 수신에 필요한 디스플레이 장치나 셋톱박스의 종류가 워낙 다양한 데다 가격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디스플레이 장치만 해도 브라운관TV를 비롯해 프로젝션TV, LCD, PDP, 프로젝터 등 다양한 제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16 대 9, 4 대 3의 화면비율에 가격까지 고려하면 선택은 더욱 복잡해진다. 화질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지만 일반 소비자들로서는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다음은 AV마니아 추승곤씨가 추천한 HD 영상 기기 고르는 방법.
▽사전 조사는 치밀하게=제품 구입 전에 시장 조사를 꼼꼼히 해야 나중에 후회가 적다. 추씨의 경우 PDP 구입을 위한 사전 조사에 두 달여 동안 매달렸다. 제품 정보에 어두운 일반인들은 주변의 전문가를 찾아 도움을 받으면 좋다. 인터넷 AV포럼 같은 전문사이트 게시판이나 인터넷 동호회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전 조사 과정에서 구매할 제품이 2, 3개로 압축되면 전자상가 등을 찾아 각 후보 제품의 실제 화질을 비교할 필요가 있다. 추씨는 “HD 영상기기는 동일한 등급의 제품이라도 화질에 차이가 날 수 있으므로 구입 전에 현장에서 성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주 보는 DVD 타이틀을 전자제품 매장에 들고 가 직접 틀어보면 화질 비교에 도움이 된다.
▽디스플레이 장치는 거주환경에 맞는 것으로=HD 영상 감상용 디스플레이 장치는 거주 환경에 맞는 것을 우선해 골라야 한다. 공간이 넉넉하지 않을 때는 대형 화면 제품보다는 브라운관TV나 액정표시장치(LCD) TV가 적당하다. 설치공간에 좀 더 여유가 있다면 PDP나 프로젝션TV 등을 고려할 수 있다. 대형 스크린을 갖춘 전용 시청룸에는 고성능 프로젝터가 잘 어울린다. 브라운관TV는 36인치 제품, PDP는 40∼50인치 제품이 대중적이다. 구입하려는 제품이 HD 기능을 지원하는지, DVD플레이어나 셋톱박스 등 보유한 하드웨어와 잘 호환되는지, 애프터서비스에 문제는 없는지 등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셋톱박스는 용도에 맞는 것으로=디스플레이 장치가 디지털TV 수신기를 내장하지 않은 분리형이라면 셋톱박스를 따로 사야 한다. 셋톱박스 가격은 30만원대부터 100만원대까지 다양하다. 하드디스크 내장형 제품은 수신된 HD 영상을 디지털 방식으로 녹화·저장할 수 있어 편리하다. DVHS 리코더와 연결해 HD 영상을 녹화하려면 고속데이터전송 단자(IEEE 1394)를 갖춘 제품이 필요하다. 단순히 지상파 디지털방송 수신이 목적이라면 중소전문업체의 저렴한 제품도 쓸 만하다.
김태한기자 free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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