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은 ‘쉽고 재미있는 과학’ 원한다”

  • 입력 2003년 10월 28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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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과학과 대중의 즐거운 만남이 풍성했다. 과학축전, 과학열차, 거리과학축제 등 다양한 행사들이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방사성폐기물처리장 부지선정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과학과 대중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은 아직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24일 국내외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과학커뮤니케이션의 현주소와 발전 방향에 대해 진단했다. 전 백악관 과학기술 담당 대변인 릭 볼첼트, 미국 공영방송인 PBS의 서북부지역 전 책임자인 버닐 클라크, 영국의 과학축전 책임자인 질 넬슨, 최영환 한국과학문화재단 이사장이 참석했다.》

“한국의 방사성폐기물처리장 논란은 미국에서도 비슷하게 발생하고 있다. 안전성에 대한 충분한 과학적 검토가 이뤄지고 난 후 이를 주민에게 설득하는 과정이 미약하다.”

볼첼트씨는 미국 뉴욕 브룩헤이븐 연구소의 사례를 들며 이렇게 말했다. 연구소의 한 반응기 작동에 문제가 생기면서 화학물질이 지하수로 흘러갔다. 이 사건으로 주변 지역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과학자들은 이 물질이 건강에 유해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과학자들이 화학물질 유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사건이 밝혀지기 전까지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민들은 이때부터 과학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최 이사장은 “일본의 아오모리에서는 7년간의 대화를 통해 주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은 후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을 설치한 예가 있다”며 “과학자들이 연구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대중과 대화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열쇠”라고 강조했다.

과학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은 대중이 즐기는 과학축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1997년 시작된 대한민국 과학축전과 각 지역의 소규모 과학축전에는 매년 약 20만명이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업그레이드가 쉽지 않으며 일회적이라는 점이 계속 지적되고 있다.

영국에서 10여년간 과학축전 프로그램을 책임져 온 넬슨씨는 “초창기에 과학축전의 평가는 얼마나 많은 인원이 참가했는지에 맞춰졌다”고 말했다. 후원해 준 기업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축전 참가자들이 무엇을 느끼는지, 어떤 프로그램을 좋아하는지를 평가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최 이사장도 “국내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며 “앞으로는 과학축전의 프로그램을 계획할 때부터 목표를 설정해 철저히 평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과학커뮤니케이션의 통로를 양적으로 비교할 때 베스트셀러는 10만명, 과학축전과 같은 행사는 20만∼30만명이다. 그렇다면 방송은? 과학이 미디어를 만날 때의 영향력은 100만명 정도로 추정한다.

과학프로그램으로 성공한 전형적인 사례는 1974년 3월 PBS를 통해 방송된 NOVA라는 프로그램이다. 일반인들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형식으로 국내에서 제작된 ‘호기심천국’과 비슷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호기심천국이 1998년을 시작으로 3년간 지속된 데 비해 NOVA는 현재까지 30년 가까이 건재하다. 또 국내에서 빌 아저씨의 과학교실로 알려진 빌 나이가 진행하는 과학프로그램(Bill Nye The Science Guy)은 1991년부터 1999년까지 100회가 제작돼 방송됐을 뿐 아니라 비디오와 책자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그 장수 비결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했다. ‘재미’다.

NOVA의 경우 현재도 평균 2.9%의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5%까지 오르고 있다.

클라크씨는 “과학방송에서 5%는 대단한 수치”라고 말했다. 또 ‘빌 아저씨’ 프로그램이 학교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14만명의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실험 키트를 제공한 예를 들며 교육적 효과를 강조했다.

참가자들이 좌담회가 끝날 무렵 손뼉을 치며 동의한 사실 2가지. 첫째 중학교 2학년 이전에 과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평생 과학과 담을 쌓는다.

둘째, 과학커뮤니케이션에서 중요한 것은 과학자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중과 눈을 마주치며 대화해야 한다는 점. 과학문화의 싹은 ‘재미’라는 양분과 ‘대화’로 키워낼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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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애 동아사이언스기자 kaj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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