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중순에 열린 미국지질학회 정기모임에서는 일리노이주립 수자원조사부의 조지 로드캡 박사가 양잿물보다 독한 폐수에서 극한 미생물을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로드캡 박사는 100년 이상 철광 산업폐기물로 오염된 시카고 근처 한 호수의 수질을 조사하던 중 다량의 미생물을 발견했다. 분석 결과 일부 미생물은 철광 폐기물의 부식과정에서 나오는 수소를 먹고 사는 박테리아의 일종으로 드러났다.
양잿물을 좋아하는 극한 미생물은 국내에서도 발견됐다. 올해 초 서해안 대천 근처의 일제강점기 한 석면광산에서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윤정훈 박사팀이 강알칼리를 견디고 사는 신종 미생물 5종을 찾아냈다. 이런 미생물은 양잿물을 소화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강한 알칼리성 폐수를 처리하는 데 유용하다. 윤 박사는 “미생물이 폐수 가운데 독성물질을 먹어치우고 해가 없는 물질을 내놓는다”며 “미생물 자체도 독성이 없어 폐수처리용 화학약품보다 안전하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에는 매우 뜨거운 환경에서 사는 초고온 미생물의 기록이 깨졌다. 8월 15일자 미국의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따르면 미국 매사추세츠대 미생물학과의 카젬 카쉐피 박사팀이 섭씨 121도에서 잘 자라는 극한 미생물 ‘스트레인 121’을 발견했다. 이전까지는 섭씨 113도에서 자라는 미생물이 최고기록이었다.
연구팀은 북동태평양 심해저바닥의 초고온온천(열수구)에서 용솟음치는 물에서 스트레인 121을 분리한 후 고온의 배양기에서 살게 했다. 그러자 섭씨 121도에서 하루가 지나자 이 미생물이 두 배로 증식했다. 흔히 병원성 세균을 죽이는 ‘압력솥’에서 살아남을 뿐 아니라 번식까지 하는 셈이다.
2002년 8월에는 한국해양연구원 이정현 박사팀이 서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의 심해저로 초고온 미생물의 탐색에 나섰다. 연구팀은 수심 1700m의 열수구 근처에서 시료를 채취한 후 배양실험과 DNA 분석을 통해 올봄에 섭씨 90∼100도에서 잘 자라는 미생물 2종을 확인했다. 이 박사는 “산소가 없고 초고온인 환경에서 황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고세균(Archaea)의 일종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고세균은 1970년대 후반 초고온에 유해물질이 가득한 심해저 열수구에서 발견된 새로운 계통의 생명체다.
극한 미생물에서 뽑아낸 효소나 유용 유전자는 활용범위가 무궁무진하다. 예를 들어 고세균에서 나온 효소는 초고온에서도 활성을 유지하기 때문에 높은 온도에서 진행되는 각종 반응에 유용하다. 섭씨 90도가 넘는 온도에서 이뤄지는 DNA 증폭과정에 관여하는 DNA 합성효소가 대표적이다. 덕분에 1990년대 후반부터 강력범죄나 대형재해 현장에서 발견된 피 한방울로부터 DNA를 추출해 신원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현재 DNA 증폭과정에 더 적합하게 사용될 만한 효소를 찾기 위해 다양한 고세균이 연구되고 있다.
반면 일반 미생물이 살기 어려운 냉장고 내 온도인 섭씨 5도에서 잘 자라는 저온성 미생물이 있다. 이 미생물에서 나온 지방 분해효소를 쓰면 찬물에서도 때가 잘 빠지는 세제가 가능하다. 2002년 12월에는 서울대 생명과학부 천종식 교수팀이 해양연구원 극지탐사팀과 함께 남극 세종기지 근처에서 새로운 저온성 미생물 7종을 발견하기도 했다.
극한 미생물은 지구생명체의 기원을 알아내거나 외계생명체의 가능성을 점치는 데도 중요하다. 고세균이 가장 좋은 연구대상이다. 옛날을 뜻하는 이름도 고대 지구와 비슷한 환경인 열수구에서 자란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다. 천 교수는 “고세균은 지구 생성 초기부터 지금까지 초고온의 극한 환경에 적응해 살아왔던 것”이라며 “고대 지구와 비슷한 고대 화성에도 이와 같은 미생물이 번성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이 12월 말부터 시작될 화성 탐사에서 생명체의 흔적을 기대하는 이유다.
이충환 동아사이언스기자 cosm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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